[인문·교양] 자연에 안겨 숨소리를 들어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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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 탐험, 일식 체험 등 과학 지식에 버무린 에세이

돌에게 말하는 법 가르치기
Teaching A Stone To Talk, 애니 딜라드 지음
김선형 옮김, 민음사, 240쪽, 1만2000원

자연 에세이로 분류되는 이 책의 저자는 미국에서 자연주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비견된다고 한다. 이 책 역시 『월든』의 자연주의 사상과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자연체험 묘사에서 한걸음 더 내디뎌 문화비평 쪽으로 뻗어가는 성찰 말이다. 책 뒤에는 보스턴 글로브 선정 ‘이 시대 최고의 책’이라는 띠도 둘러있어 만만치 않은 무게의 책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현재 웨슬리안대 명예교수로 있는 이 저자를 미국에서 ‘대지의 성자’라고까지 치켜세우는 것에는 고개가 좀 갸우뚱거려진다. 최소한 이 책으로만 판단하자면 그렇다. 곧잘 감상주의 혹은 현학 취미의 글쓰기로 빠지는 저자 특유의 문장이 그렇게 흡인력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과연 얼마만큼 영성(靈性)에 넘치는 명상인가는 독자들마다 호오(好惡)가 엇갈릴 듯 보인다.

어쨌거나 『돌에게 말하는 법 가르치기』는 매력을 인정할 만하다. 자연관찰에 주관적 느낌을 과감하게 섞은 이 새로운 과학 에세이는 예전 정복대상으로서 자연을 바라보지 않고, 외경의 눈으로 자연에 안기려는 태도를 보인다.

계몽주의 이후의 공격적인 자연관과의 작별이다. 모두 14개의 독립된 소재를 다룬 에세이의 소재는 극지 탐험·신기루에서 일식 체험·갈라파고스 섬 관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다음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의 갈라파고스 섬에 대한 묘사인데, 매우 문학적인 묘사가 눈에 띈다.

“작은 섬 하나가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이 대양 한 가운데 솟아올라와 있는 수도 있다. 무(無)를 퉁탕퉁탕 두들겨 만들어낸 혼돈덩어리다. (…) 이건 환상적인 발화(發話)다. 마치 내가 입을 열면 프렌치호른이나 꽃병 같은 것들이 톡톡 튀어나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들의 장난.” (145쪽)

갈라파고스 섬은 찰스 다윈이 1835년 비글호를 타고 와 자연관찰을 시작해 진화론의 가설을 이끌어낸 유명한 섬. 저자는 진화론을 적자생존론으로 확대 해석하는 사회 다윈이즘을 놓고 “정나미 떨어진다”고 자기 느낌을 토해내거나, 진화론을 부정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 야유와 조롱을 보내기도 한다. 즉 자연과학 지식을 토대로 종횡무진하는 문학적 글쓰기는 이 저자의 주특기인 셈이다.

인상깊은 것은 개기 일식을 직접 체험한 뒤 느낀 벅찬 감회를 표현한 대목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진을 통해 일식을 보지만, 그것은 “내면 체험의 광대함과 동시성을 담아낼 수 없는”그림자에 불과하다. 막상 일식을 체험하는 순간 장려함과 공포 앞에 “뇌 속의 비상구가 쾅 소리를 내며 닫혀버렸고” “혈관에서 피가 빠져나갔다”(21쪽)고 털어놓는다. 그것이 바로 “책에서 그토록 많이 읽었지만 직접 몸으로 느껴본 것은 한번도 없는 우주”의 힘이라는 암시다.

1945년생인 애니 딜라드는 대학에서 영문학과 종교학을 전공했다. 젊을 적 폐렴에 걸린 뒤 자연과 벗삼는 야영생활을 익히는데 이를 계기로 그의 삶 자체가 변화했다. 자연체험을 토태로 한 글쓰기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이런 자연 에세이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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