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체로 요리한 중국문학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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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금언(今言)을 가지고 고언(古言)을 들여다 봐선 안된다. 현재 통용되는 말의 이미지로 고전을 번역하면, 거대한 오해의 편차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각은 일본이 한발 빨랐다.

중국 고전에 대한 소양이 일반적이었던 에도시대에 이미 '한자는 외국어일 뿐' 이라며 고전 재해석 작업에 돌입했다. 다 아다시피 그 주인공은 깨인 유학자 오규 소라이(1666~1728)였다.

서론이 길었다. 번역의 문제로 서두를 꺼낸 이유는 송철규(37)의 '중국 고전 이야기' 도 책의 상당부분을 중국 고전의 번역에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국 고전 읽기 붐에 편승한 얄팍한 상업주의적 책은 분명코 아니다. 다만 제목에서 암시된 포괄성과 달리 철학과 역사 등을 아우르지 않고, 실은 중국 문학에 국한시켰다.

선진(先秦.진나라 이전)시대부터 당나라까지를 다룬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송나라에서 청나라까지의 대표적 작가와 작품을 망라하고 있다.

구양수.왕안석.소식.소철 등 당송 8대가에서 중국 4대 기서(奇書)인 삼국지.수호지.서유기.금병매, 나아가 TV 드라마로 유명했던 판관 포청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옛 중국 문학 전반을 시대별로 폭넓게 다뤄 계몽적 저작으로는 평균수준을 시원하게 뛰어넘는다.

2권에선 삼국지의 주인공을 관우.제갈량.조조로 꼽는다든지 서유기의 삼장법사를 인자한 승려가 아닌 우유부단하고 좀 모자란 인물로 파악한 점 등 나름대로의 해석이 눈길을 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친절히 설명해주는 문답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의 순서를 따라가다 보면 옛 중국의 문학과 문화 한복판에 서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한 편이 끝날 때마다 그 편에서 나온 기본적 개념들을 다시 한번 풀어주어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데 올해 초 나온 1권의 상업적 성공에 고무된 탓일까(초판 3쇄 발행), 1권을 낸지 9개월만에 2권이 나온 것은 놀라운 속도다.

설혹 1, 2권 원고를 미리 다 써놓고 있었다 치자. 그렇더라도 저자의 연배로 볼 때 거의 대가 수준에서나 쓸 수 있는 중국 문학 전반의 개괄서 작업을 이렇게 빠른 시일내에 할 수 있다는 점, 그것이 석연치 않다.

저자의 고백에 의하면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의 중국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기존의 성과를 재구성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일종의 짜깁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짜깁기를 한 출처를 밝혔어야 할텐데 서문 말미에 "일일이 출전을 밝히지 못한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 한마디 던져놓고 있는 것은, 이 책을 길잡이 삼아 좀더 깊이 들어가려하는 독자들에겐 자못 섭섭한 일일 것이다.

아마도 과욕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첫 작품인 이 책에서 너무 방대한 분량을 한꺼번에 소화하려 했다. 그것이 오히려 책의 밀도(密度)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하나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은 이러한 류의 입문서가 국내에선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다.

이 책 1, 2권에는 방대한 작가와 작품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 중 많은 것들은 아직 원전이 온전하게 번역도 되지 않았다.

독자들이 모두 전문가처럼 원전으로 직접 책을 볼 수 없는 바에야, 이 책의 완성도가 얼마나 되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번역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믿고 인용하며 볼 수 있는 본격 연구서 수준은 그야말로 드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선 저자가 속해있는 한국중국학연구회 같은 곳에서 보다 충실한 중국고전의 번역, 또는 재해석 작업을 해내길 기대한다면 과욕일까.

그럼에도, 쉽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 중국문학 개설서가 별로 없는 우리 실정에 흥미를 유발시키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의미에서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

2권도 시대만 다를 뿐 책의 구성은 1권과 동일하다. 시대별로 대표적 작가의 생애와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요약 정리하고 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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