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사들 집단 반발 자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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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과 신승남(愼承男)대검차장 등 검찰 수뇌부에 대해 한나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자 검사들이 발끈하고 있다.

검사들은 지역별로 혹은 사법시험 동기생끼리 잇따라 모임을 갖고 탄핵안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연대서명운동.성명서 작성 등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집단 사표 등 극단적인 방법까지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수의 탄핵 움직임에 대해 젊은 검사들이 반발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검찰의 권위 손상이 극심했던 데다 '정권의 시녀' 라는 손가락질까지 받기 일쑤였으니 명예와 권위를 중시하는 검사들의 고충이나 갈등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또 극히 일부에 불과한 정치적 사건 몇 건이 석연찮게 처리됐다고 검찰 조직 전체를 매도하는 현실에 소장 검사들이 불만을 터뜨릴 만도 하다.

한나라당이 검찰총장과 차장을 한꺼번에 탄핵발의한 것도 정도(正道)가 아니다.

지휘관과 참모에게 같이 책임을 묻는 꼴이니 당리당략적인 접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사들이 '검찰 길들이기' 라고 반발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해를 한다 해도 이번 검사들의 집단 반발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사태의 본질이자 원인인 선거사범의 편파수사 시비에서부터 검찰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선거사범이 여야 공평하게 처리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선거사범의 편파 수사 시비는 이미 시민단체와 각 언론이 여러 차례 입을 모아 지적한 내용이다.

특히 여당 중진 몇 명에 대한 처리는 누가 봐도 문제가 있었고 여당 의원 두 명에 대한 선관위의 재정신청을 법원이 인용한 예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따라 상명하복(上命下服)이 법으로 정해진 검찰 조직에서 집단행동은 공직자 기강 해이의 표본이다.

젊은 검사들의 행동이 수뇌부의 뜻과 다르다면 바로 집단 항명 사태고 그렇지 않다면 수뇌부가 묵인.방조한 셈이니 어느 쪽도 검찰로서는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또 사정의 중추기구로서 다른 공직자들에게 미칠 부작용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 수뇌부 탄핵안이 지난해에 이어 연례행사처럼 된 자체를 검사들은 먼저 부끄러워해야 한다. 정치권을 원망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고급 옷 로비 의혹 사건이나 파업유도 의혹 사건, 거액 대출 외압 의혹 사건 등에서 특검제 도입과 재수사로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이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외면해선 안된다.

지금 검찰에 필요한 것은 검찰 독선주의로 보이기 쉬운 검사들의 집단 행동이 아니라 국민 신뢰의 회복이란 점을 무엇보다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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