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내년 경제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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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내년도 경제전망을 들여다 보면 외환위기 이후 경기회복의 온기가 윗목으로 채 전달되기도 전에 아랫목이 식어간다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경기가 너무 빨리 달아올랐다 금방 식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다.

유가 급등과 증시 침체로 이미 중산층 및 서민층은 피부로 불황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내년에는 수출이나 설비투자도 함께 줄어들어 경기가 본격적인 둔화국면에 들어설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KDI는 내년에 우리 경제가 심각한 지경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부실기업의 과감한 퇴출과 같은 강도높은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경기 하강국면 빨리 올 수도=통계청을 비롯한 정부는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생산과 설비투자가 호조를 보여 현재 경기는 일시적인 조정국면에 있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KDI 전망에서 드러나듯 이런 시각은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포드의 대우차 인수 포기와 현대그룹 사태로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면서 내년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과 현대경제연구소 등 민간 연구소들도 최근 내년 성장률을 5~6%대로, 경상수지 흑자폭은 20억달러 내외로 낮췄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기업.금융 구조조정의 진행상황을 봐가며 전망치를 다시 수정할 계획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홍순영 수석연구위원은 "주식.채권시장 침체, 은행의 보수적인 자금운용 등으로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가 막혀 설비투자가 크게 위축될 것" 이라면서 "이는 금융불안이 실물부문으로 옮아가는 현상" 이라고 분석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우리 경제는 본격적인 하강국면으로 들어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승명 수석연구위원은 "올 연말 경기가 정점을 칠 가능성이 크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경기하강 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다" 고 내다봤다.

재경부 관계자는 그러나 "경제성장률 5~6%면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근접해 가는 과정으로 경제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 말했다.

◇ 정책 방향 이렇게 잡아야=KDI는 우리 경제가 급격한 하강국면을 피하기 위해서는 부실한 대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인 고려로 부실기업 퇴출을 늦출 경우 곧바로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얘기다.

KDI의 김준일 거시경제팀장은 "부실기업 정리와 회생에는 많은 시일이 걸린다" 면서 "회생이 어려운 기업을 퇴출.청산하는 데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실업률 상승 등은 감수해야 한다" 고 말했다.

부실기업을 퇴출시키는 과정에서 채권금융기관들의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 비율이 낮아질 경우 적기시정조치 발동을 일정기간 유예해 주고 임원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고 KDI는 밝혔다.

급격한 긴축기조로 전환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게 KDI의 입장이다. 조동철 연구위원은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물가가 오르고 이것이 임금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물가상승세가 중장기적인 추세로 자리잡을 수 있다" 며 "통화당국은 급격한 긴축을 해서는 안되지만 물가상승세가 지속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KDI는 늘어나는 조세수입은 최대한 재정적자 감축에 사용해 올해 재정적자 목표를 국내총생산(GDP)의 2.0%에서 1.5% 미만으로 낮출 것을 권고했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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