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2역’의사 기자 아이티 파견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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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소녀의 뇌를 수술해 줘 ‘참여 저널리즘’에 불을 붙인 CNN 기자 산제이 굽타. [중앙포토]

의사 출신 기자들이 아이티 지진 참사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이른바 ‘참여 저널리즘’이 화제다. 지진을 취재하는 미국의 모든 지상파 방송들은 의사 기자들을 현장에 파견했다. CBS 방송은 의사 출신의 의학담당 기자 제니퍼 애슈턴을, NBC는 외과의사인 낸시 스나이더맨을, ABC는 질병관리센터 출신 리처드 베서 박사를 아이티 재난 현장 취재 기자로 보냈다. 주요 방송사들이 예외 없이 의사 기자들을 피해 현장에 보낸 것은 처음이라고 워싱턴 포스트(WP)는 21일(현지시간) 전했다.

이들은 참사 현장을 전하는 동시에 인술을 베푸는 1인2역을 해내고 있다. 애슈턴은 팔이 절단된 10대 소녀의 응급처치를 도왔고, 스나이더맨은 뼈가 부러진 주민들을 치료했다. 베서는 야외 공원 텐트에서 20대 임산부의 분만을 도왔다. 의사 기자들의 활약은 18일 아이티 소녀의 뇌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낸 CNN 기자 산제이 굽타 박사의 영향 때문이라고 WP는 분석했다.

취재한 기자가 해당 기사나 보도의 대상이 되는 사례는 통상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뉴스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피하거나 취재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사실을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1인2역은 파격에 해당한다.

의사 기자들의 참여 저널리즘에 대해 언론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저널리즘 윤리를 전공한 스티븐 워드 위스콘신대 교수는 “기자가 의료 지원을 하는 것은 극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더해준다”면서도 “자칫 작위적이거나 감정에 치우쳐 총체적인 사실을 모호하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사 기자들의 치료 장면이 모두 해당 방송사를 통해 방영된 데 대해 자사를 홍보하는 상업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해당 기자들은 아이티와 같은 끔찍한 환경에서는 의사로서의 의무가 기자로서의 의무를 압도한다고 반박했다. 베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와야 한다고 돼 있다”며 “내가 진료하는 모습이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곳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는 모습으로 시청자가 인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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