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 영화제] '밀리언 달러 호텔' 빔 벤더스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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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무한한 사랑을 가진 사람의 맑은 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한 빔 벤더스(55)감독은 자신의 작품 '밀리언 달러 호텔' 을 관객에게 선보인 뒤 이렇게 말했다.

2000년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으로 영화제 전부터 화제가 됐던 이 작품은 한때 미국 로스앤젤레스 최고의 호텔에서 지금은 극빈자 수용소로 전락한 밀리언 달러 호텔을 배경으로 '거지들의 집사' 톰톰과 타락한 '거리의 천사' 엘로이즈의 순수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7일 오후 7시30분 부산시네마에서 상영된 이 작품은 일찌감치 매진돼 취재진조차 좌석을 구하지 못할 정도로 부산영화제의 최대 화제작이다.

작품 뿐 아니라 벤더스가 참가한 행사들은 초반 부산 영화제의 꽃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성황을 이뤘다.

이날 오후 남포동 극장가 PIFF광장에서 열린 벤더스의 핸드프린팅 행사에는 넓은 광장에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이어 코모도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는 1백여명의 내외신 기자가 몰렸고 '밀리언 달러 호텔' 상영 직후 가진 '관객과의 대화' 에도 8백여명이 행사장을 꽉 채우며 예정 시간 40분을 훨씬 넘겨 1시간20분 동안 진행됐다.

벤더스는 자신의 영화 세계를 놓고 진지한 토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객석에서 울린 휴대폰 소리가 진행을 방해해도 "이렇게 전화를 좋아하는 나라는 처음 본다" 는 위트로 웃음을 선사했고 행사 후 팬들의 사인 공세도 일일이 받아주었다.

수준 높은 작품과 빔 벤더스 등 유명 영화인의 방문으로 부산영화제는 한층 풍성하고 의미있는 축제가 됐다.

세계 유명 영화제의 초청에도 잘 응하지 않는다는 그가 선뜻 참가해 부산영화제의 위상을 올려놓은 데다 그가 보여준 태도는 영화매니어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신인이던 1976년 주한독일문화원이 주최한 '뉴저먼 시네마영화제' 에 게스트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던 적이 있다.

이번 방문에 대해 그는 "무엇보다 네 번의 부산 영화제를 놓쳐 아쉬웠고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친구들이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하더라" 고 말했다.

'밀리언 달러 호텔' 이 다소 난해했던 전작들보다 한층 쉽고 박진감이 더해졌다는 평에 대해서 그는 "이 작품은 새천년 새로운 세대의 사랑 이야기인데다 20대 초반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 이라고 대답했다.

벤더스는 독일 출신이지만 활동무대는 주로 미국이다. '밀리언 달러 호텔' 역시 미국적인 영화란 평을 듣는다.

이에 대해 그는 감독으로서 유럽과 비교가 안되는 시스템을 갖춘 미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영화는 독일적인 정서가 묻어나기 때문에 결코 미국 영화는 될 수 없다면서 그래도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은 "할리우드에서 실패하고 돌아가면 좋겠느냐" 고 되물었다.

벤더스는 초기 '시간의 흐름 속에' (76년)란 작품에서 분단을 다룬 적이 있어 "통일이 된 후 비슷한 주제로 다시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었느냐" 고 기자들이 묻자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자의식이 너무 강하게 나타날 것 같아 포기했다" 고 말했다.

그는 또 통일에 대해 "처음에는 환희였지만 지금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다 보니 씁쓸한 것으로 변했다" 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은 지금 실질적인 통합이 아니라 겉모습의 통일만 이뤄져 있어 누구도 통일을 반기지 않으니 한국은 그런 전철을 밟지 말았으면 좋겠다" 고 덧붙였다.

그는 디지털 영화와 관련, 미래 영화의 키워드를 디지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5~10년 후 영화에도 디지털 혁명이 일어날 것" 이라며 "아마추어가 디지털 카메라로 극장용 영화를 만들 날도 올 것" 이라고 내다봤다.

신용호 기자

[빔 벤더스는...]

독일의 전후 세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감독.영화평론가로 활동하다 제작에 뛰어들어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가 됐다.

‘파리,텍사스’(84년)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베를린 천사의 시’(86년)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세계적 거장이다.

70년대 초 ‘도시의 앨리스’‘잘못된 움직임’등 여행을 중요한 모티브로 한 작품을 통해 전후 독일 역사를 탐구했으며 80년대 ‘파리,텍사스’등으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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