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된 독일 명과 암] 5. 독일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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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헬무트 콜 전 총리가 독일 통일의 견인차였다면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외무장관은 통일 열차의 레일을 깐 사람이다.

콜이 국내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통일을 밀어붙일 때 겐셔 전 장관은 2차세계대전 전승 4개국(미국.옛소련.영국.프랑스)의 승인을 얻어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접어든 남북한 모두에게 18년간 외무장관을 지냈고 독일 통일을 이끌어낸 겐셔 전 장관의 충고는 시사하는 바 클 것이다.

- 통일 10주년을 축하한다.통일의 주역이자 통일 독일 첫 외무장관으로서 지난 10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통일 협상 과정에서 전승 4개국과 주변국들을 설득해 통일을 위한 최상의 외부 조건을 조성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독일은 이제 분단국이 아니며 주권도 되찾았다.

유럽 심장부에 위치한 독일은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중요한 일원이자 파트너로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 내부적인 문제도 적지 않은데 옛 동.서독 지역 주민간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는가.

"40년 이상을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완전 동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구 동.서독 주민간의 문제들을 너무 과장해선 안된다.통일 이후 양측 주민들은 점점 긴밀하게 일체화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특히 젊은 세대는 과거 문제가 아니라 공동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에서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 같은 분단국이었지만 독일과 한국 경우는 차이가 많다.독일 통일에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어떤 게 있다고 보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이 자꾸 만나 상호 신뢰를 쌓아가면서 한민족 통일 의지를 결연히 다지는 것이다.한반도에서도 분단과 이산의 시대는 끝이 났다.이제는 휴전선이 없어질 차례다."

- 분단 이래 처음으로 지난 6월 남북한 정상이 만났다.남북 정상회담을 계속 추진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도록 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나는 개인적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긴밀한 유대감을 느끼는데, 그가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난 것은 역사적 사건이다. 정상회담으로 가능해진 남북 화해협력의 흐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남북한 모두 통일에 대한 역사적 사명감을 망각해선 안된다."

- 통일을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면.

"무엇보다 내부적으로 국민들이 단결해야 하고, 또 국민들이 통일의 의지를 분명히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아울러 외부, 즉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에 신뢰감을 심어줘 그 누구도 통일에 반대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통일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개인적으론 한반도에 분명 통일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믿는다."

- 독일 통일은 전승 4강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한반도에서도 남북 당사자간 회담 외에 미국.일본.중국.러시아를 포함한 4자회담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없다.

한반도 주변 4강이 한반도 평화정착, 나아가 통일에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가.

"외무장관을 해 본 경험에 따르면 한반도 통일을 위해선 주변 여건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때문에 이들 4강을 통일 협상에 끌어들이라고 권하고 싶다.내 생각으로 현재 이들 4강의 이해관계는 냉전 체제가 막 끝나려던 90년 독일 통일 당시보다 (한국의 통일에)훨씬 유리해졌다."

- 한국 정부의 이른바 '햇볕정책' 을 어떻게 평가하나.

"통일을 향한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독일의 동방정책을 준거로 삼았다.하지만 당시 동방정책처럼 햇볕정책도 북한 정권의 안정화를 도울 뿐이란 비판도 없지 않은데.

"독일의 동방정책을 비판했던 사람들은 오늘날 말이 없다.대신 통일 이후 동방정책 추진자들의 판단이 옳았음이 입증됐다.햇볕정책은 북한체제를 공고하게 해주는 게 아니다.

나는 (햇볕정책이)민주적 전제조건 아래에서 남북한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한 안정적인 틀을 만들 것으로 믿는다."

<끝>

베를린=유재식 특파원.유권하 기자

[겐셔는 누구]

▶1927년 동독 할레 인근 라이데부르크 출생

▶46년 독일자민당

(LDPD) 가입, 할레대 입학 ▶48년 라이프치히대 전학, 제1회 사법시험 합격

▶52년 서독 이주, 자민당(FDP) 가입

▶65년 연방하원 의원 당선

▶69~74년 내무장관

▶74~92년 부총리 겸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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