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계화 거대 세력화…국제기구들 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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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분별한 세계화' 에 반대하는 국제 시위대가 각종 대규모 국제회의, 특히 경제 관련 회의마다 찾아다니며 실력행사를 벌여 회의의 원활한 진행에 차질을 주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협상을 무산시킨 데 이어 이번에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를 조기 폐막시켰다.

이들은 다음달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선진20개국(G20)회의에서도 시위를 벌이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이런 추세라면 다음달 20~21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격렬한 시위=지난 26일 열린 IMF.세계은행 연차 총회를 저지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집결한 1만2천여명의 시위대는 "IMF를 박살내자" "IMF는 합법적 마피아" 등의 구호를 외치며 27일 밤 늦게까지 프라하 시내에서 게릴라식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을 뚫기 위해 화염병.돌 등을 던지고 각목을 휘두르자 체코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맞서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일부 시위대는 회의장 근처까지 진입, 회의 대표단들이 한때 건물 안에 갇히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들은 회의장 근처에 있던 맥도널드와 KFC 점포에 침입해 유리창과 집기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체코 경찰은 시위대와 진압경찰을 합쳐 1백명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IMF는 28일까지로 예정됐던 총회를 27일 서둘러 마치면서 "시위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진행이 순조로워 회의를 일찍 끝내게 됐다" 고 발표했다.

그러나 총회 의장을 맡은 트레볼 매뉴엘 남아공 재무장관은 "폭력에 굴복해 유감" 이라고 말해 시위가 일정 단축의 원인임을 시인했다.

◇ 시위대의 요구=시위대의 요구는 한마디로 '무분별한 세계화에의 반대' 다. 이들은 미국 등 선진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거대 자본의 논리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며, IMF와 세계은행은 그 앞잡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세계화를 통해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으며, 가난한 나라의 경제상황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경제적 세계화에 저항하는 모임' (INPEG)소속의 첼시아 모첸(24)은 "세계화에 저항하는 연대활동과 시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이 운동은 공통의 이념이나 지도부를 두고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이번 시위에도 환경.여성.노동단체와 사회운동단체, 심지어 무정부주의 그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이 참가했다.

시위대를 의식해 IMF와 세계은행은 이번 총회의 주요 의제를 최빈국 외채탕감으로 정하기도 했다.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는 "오늘날 인구의 20%가 세계 전체 부의 80%를 지배하고 있으며, 하루 수입이 2달러 이하인 인구도 28억명이나 된다" 며 세계화의 부작용을 언급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적이 아니며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라고 말해 시위대와 시각차를 드러냈다.

◇ 과거 시위 사례=지난해 11월 30일 시애틀 WTO 각료회의 개막식은 시위대의 도심 집결로 개막식 자체가 취소됐다.

WTO가 출범시키려는 뉴라운드가 정부.기업의 이익만 추구한다는 것이 반대의 주요 이유였다. 당시 회담 참가 신청을 낸 비정부기구(NGO)는 7백76개, 인원은 5만여명에 달했다. NGO의 계속되는 시위로 결국 WTO 협상은 결렬됐다.

올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도 시위로 얼룩졌다. 국제무역 자유화와 시장개방을 촉구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특별 연설이 끝나자 세계화 반대론자들이 회의장 진입을 시도, 경찰과 대치했다.

지난 4월 IMF.세계은행의 봄철 연례회의도 1만여명의 시위대가 몰리는 바람에 큰 곤욕을 치렀다. 당시 워싱턴 DC 경찰은 총회 반대 운동본부에서 화염병을 압수하고, 시위대 6백여명을 체포했다.

지난 7월 G8 정상회담을 개최한 오키나와(沖繩)는 평화.인권단체들을 비롯한 NGO들이 대거 몰려오자 프레스 센터 인근에 NGO센터를 설치하고 활동을 지원했다. 폭력 시위로 회담이 어려움을 겪을까봐 이들을 양지로 끌어내 평화시위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홍수현.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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