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무죄 판결은 ‘기교 사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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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 대한 서울남부지법 이동연 판사의 판결을 놓고 ‘기교(技巧 )사법’이란 지적이 나온다. 강 대표가 지난해 1월 ▶국회 경위의 멱살을 잡고 ▶사무총장실에서 탁자를 부수고 ▶‘공중부양’을 했던 실체적 진실에도 불구하고 이 판사의 논리전개는 국민과 법조인의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판사는 강 대표가 민노당 현수막을 철거하는 국회 경위들을 폭행했다는 혐의(공무집행방해)에 대해 “적법하지 않은 공무 수행이었던 만큼 무죄”라고 판단했다. 이 판사가 제시한 주요 근거는 “17대 국회 이래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여러 차례에 걸쳐 국회 본회의장 등에 현수막을 부착한 적이 있으나 강제로 철거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경위들은 불법 농성을 하던 민노당 당직자들이 현행범으로 체포된 뒤 현장정리 차원에서 현수막을 수거했다는 점에서 평상시 현수막 철거와는 전혀 다른 성격임을 무시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같은 법원 마은혁 판사가 “민주당 당직자는 빼고 민노당 당직자만 기소한 것은 공소권 남용”이라며 공소기각 판결을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판사는 또 강 대표가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실에 난입했을 때 박 사무총장이 신문을 보고 있었으므로 무죄라는 논리를 폈다. “ 박 사무총장이 원탁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것은 공무가 아닌 휴식이었다”는 법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인천지법은 지난해 4월 경찰서 지구대에 들어가 행패를 부린 혐의(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된 A씨(45)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경찰관이 공무에 해당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이 판사는 강 대표가 탁자를 넘어뜨려 부서지게 한 혐의(공용물손상)에 대해선 “박 사무총장을 상대로 이뤄진 일련의 행위 중 하나로 상위 개념인 공무집행방해에 포함돼 흡수되므로 별도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또한 “형사법상의 상하위 개념을 떠나 별도의 혐의 자체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입법부의 일은 사법부로 넘기지 말고 스스로 해결하라는 취지의 판결인 것 같지만 판사는 정치적인 고려 없이 법대로만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국민의 주목을 받은 사건이다 보니 판사 스스로 치밀한 법적 논리를 세우려고 노력한 것이지, 선입견이나 예단을 갖고 사실과 법리를 꿰맞추려 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박성우 기자

기교사법=판사가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언어적 기교로 사실관계와 법리를 꿰맞추는 경우를 일컫는 것. 학술용어는 아니지만 최근 ‘편향 판결’ 논란을 풍자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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