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돈 잔치' 끝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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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참 말도, 탈도 많았던 사안의 뚜껑이 열렸다. 공적자금 40조원 추가조성 선언 말이다.

지난 1기 경제팀이 "64조원만으로 충분하다" 고 장담한 말에 끌려다닌 것을 떠올리자면 '늦었지만 다행'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물론 상황을 처음부터 정확히 판단.대응하는 것은 필요하다. 첫 진단이 빗나갈 경우 오진을 인정하는 용기도 여간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지난 경제팀은 그 고백의 기회를 미루다가 놓친 꼴이 되고 말았다.

무릇 구조조정이란 게 그렇다. 금융 경색으로 기업은 어려움을 당하고 근로자는 일자리에 위협을 받게 마련이다. 최악의 경우 나라 경제를 아예 벼랑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치부를 감추고 태연하게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랑니 통증에 비유하면 좋을 것 같다. 애초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면 좋을 텐데 꼭 뒤늦게라도 사람의 밤잠을 설치게 만든다. 그런데 경험이 일천한 치과의사의 경우 제거 수술 도중에 손을 드는 일마저 생긴다.

바로 이런 상황이다. 가뜩이나 환란의 치유 차원에서 이뤄지던 우리의 구조조정 작업 아니었던가. 은행권 한 관계자는 " '실패한 수술' 을 일단 인정하면서 더 깊고 노련한 메스질로 구조조정의 매듭을 짓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간주할 만하다" 는 입장이다.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의 표현대로라면 "펌프로 물을 퍼올리기 위해선 먼저 충분한 물을 펌프에 퍼 부어야 한다" 는 것.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차피 첫번째 물을 너무 아끼다가 문제가 심각해진 판이라 다른 도리가 없다는 표정들이다.

하지만 증권연구소 한 관계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번 공적자금 추가조성이 금융.기업 구조조정의 마지막 카드가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할 우려는 여전히 다분하다." 그러면서 그는 "세번째는 공적자금이란 이름의 돈이 아니라 금융기관 또는 기업의 즉각적인 희생을 통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고 주문하고 있다.

이제는 인위적 회생이 아니라 퇴출을 감행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결국 이번 공적자금 추가투입은 정부가 더 강한 힘을 얻는 '돈 잔치' 가 아니라 시장의 힘을 가시화하기 위한 '터 닦기' 로 삼아야 마땅할 것 같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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