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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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물 한 그릇 건넨 청년과 연분 싹터

그들은 짧은 축구복 차림이거나 러닝 바람이었는데 모두들 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오빠는 물론이고 모두들 물 좀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들 모두를 먹이려면 큰 옹기 항아리에 담아 내가야겠지만 경순은 얌전하게 깨끗한 사기대접에 정화수를 가득 떠서 두 손으로 내밀었다. 어느 젊은이가 그릇을 덥석 받아들더니 단숨에 마셔버렸다. 누군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그 복, 복(福)자에 입 대고 마셨으니 이제 천생연분이다!

하여튼 말 한마디가 하늘의 뜻처럼 되던 시절이라 경순은 그들이 모두 물러갈 때까지 뒷방으로 달아나서 꼼짝도 못하고 숨어 있었다. 나중에 경순은 기독교 집안이었으면서도 그 청년 때문에 천도교 학생회에 들게 된다. 우리는 자라면서 어머니에게서 천도교 얘기를 듣게 되자 의아해서 물었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결혼하고부터 작고할 때까지 기도를 그친 적 없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노트에 남은 기록으로 아무개라는 그 청년이 천도교 학생회에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대동강변을 산책하기도 하고 더러는 호떡이나 냉면도 같이 먹었던 듯싶다. 경순은 특히 육상이나 탁구 같은 당시에 여학생들에게 권장되던 운동을 좋아했고 소질도 있어서 시합에도 나갔다고 한다. 그녀는 오빠와 함께 스케이트를 배워서 자매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얼음을 지치러' 얼어붙은 대동강에 나가곤 했다. 그 아무개 청년도 얼음판에 자주 나왔고 두 사람은 끝 간 데 없이 꽁꽁 얼어붙은 대동강의 상류와 하류를 마음대로 미끄러져 달렸다.

오빠 경덕의 친구였던 그 청년도 일본에 유학을 갔었는데 거기서 경순이 그를 만났는지 아니면 두 사람 사이가 그전에 깨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어머니가 혼자 되고 나서 오랜 후에 큰누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좋아하는 이를 친구에게 소개해서는 안 된다'라고 이른 걸로 보아서는 아마도 경순은 그의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몇 년 전에 매우 연로한 어느 할머니가 내게 전화를 하여 어머니 소식을 물은 적이 있었고 자신이 그녀와 한반 짝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큰누나도 나중에 그녀와 통화를 했었다. 누나는 그제서야 오래전에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일러주었던 얘기가 떠올랐다고 했다.

아버지 전 목사가 신사 참배 반대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자 아직도 어린 동생들이 많은 집안의 둘째 딸이었던 경순은 공부를 포기하고 집에 돌아온다. 첫째 경숙은 이미 만주로 떠난 뒤였다. 그 즈음에 어느 중매쟁이를 통하여 청혼이 들어온다.

황기욱은 황해도 신천 사람이다. 그는 위로 누나 하나가 있었지만 중농 집안에서 오대 독자로 태어났다. 누나를 낳고 한참이나 세월이 지난 뒤에 얻은 늦자식인 데다 아들이 귀한 집안이어서 기욱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모양이다. 더구나 그는 아내처럼 섬세한 표현력도 없고 말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 자신에 관한 단편적인 얘깃거리조차 별로 남기지 않았다. 알려진 이야기들도 대개는 그의 아내가 듣고 기억해 두었던 기억의 편린들이다. 어쨌든 그의 유년기는 행복했지만 얼마 오래가지는 못했다. 부모가 차례로 일찍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누나는 연안 백씨 집안의 사내와 혼인을 했는데 기욱은 그들 밑에서 어두운 사춘기를 보냈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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