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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원안+α는 국토 균형발전 깨뜨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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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호 05면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은 “국민이 세종시 원안에 대해 잘 모른다”며 “기업단지나 수출자유구역처럼 기업·대학이 들어가려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원안에는 그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일로 실장이 된 지 1년이 된다. 최정동 기자

권태신(61) 국무총리실장(장관급)은 정운찬 국무총리가 지난해 9월 세종시 수정 방침을 시사한 이후 세종시에 묻혀 살았다. 국무총리실이 세종시 신안(新案) 마련의 산실이 되면서 그가 산파역할을 했다. 지난 넉 달여 동안 휴일이 없다시피 신안 마련에 매달렸다. 일주일에 40여 차례의 회의를 소화했다고 한다. 물론 세종시 회의 외에도 폭설 대책 관계 차관회의, 정례 차관회의, 비상경제 대책회의 등 그가 주재하거나 참여해야 할 회의가 한둘이 아니다.

세종시 신안 산파 역할 한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행정고시 19회 출신으로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 등 줄곧 경제 관료의 길을 걸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도 지냈다. 공무원 워크숍 등의 단골 사회자로 나설 만큼 입담이 좋다. 특히 관가에선 ‘영어 농담의 귀재’란 소리를 듣는다. 1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내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를 시작하려 하자 권 실장은 “농담부터 하나 하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영국 농담입니다. 영국에서 강도를 머거(Mugger)라고 합니다. 머거가 한 정치인에게 총을 들이대면서 ‘돈 내놔(Give me your money)’라고 했대요. 그랬더니 그 정치인이 “나는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정치인이야”라고 받아쳤다지요. 그러자 이번엔 머거가 ‘내 돈 내놔(Give me my money)’라고 했다는 거죠.”

권 실장은 “언제나 국제회의에 가면 농담부터 하는데 그래야 내 말을 잘 듣더라”며 웃었다. 하지만 세종시 문제에 대한 질문에 들어가자 미소는 사라졌다.

-세종시 신안에 대한 여론이 나아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세를 바꿀 만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잘 몰라 그런 겁니다. 원안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라서지요. 행복도시법(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은 모양은 그럴듯합니다. 수도권 인구 분산과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도시를 건설한다는 거지요. 국고 지원액이 8조원이고요. 하지만 다른 기업단지나 수출자유구역처럼 기업·대학·연구소가 가려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그게 하나도 없어요. 그게 원안입니다. 원안에 따른 도시계획을 보면 인구 50만 명을 채우라는 지침 때문에 아파트만 20만 호가 들어갑니다. 지도를 보면 전부 아파트 단지뿐이죠. 베드타운입니다. 학교· 산업용지가 6.7%인데 그중 산업용지는 1.1%예요. 기형적인 도시죠. 국토 균형발전을 꾀하고 인구를 분산하려면 일자리가 나오고 경제 활동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제도적 장치가 없어요. 원안은 마치 ‘하버드대에 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말만 해 놓고 실제 공부는 안 한 학생 같은 경우지요.”

-원안+α를 하면 신안처럼 하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말씀드렸듯 원안에는 뭘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요. 만약 +α의 의미를 확대 해석해 현재 신안처럼 도시를 만들고 거기에 행정부처가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지역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게 됩니다. 행정도시에 중이온가속기가 설치되는 과학비즈니스벨트까지 들어간다면 한 지역에 행정도시와 과학도시를 다 준다고 다른 지역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국가 재정도 더 들어가겠죠. 그건 균형발전이 아닙니다. 또 원안대로 한다는 것은 결국 수도를 분할한다는 것 아니겠어요.”

-세종시 신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당부를 했는지요.
“큰 지침이 있었지요. 먼저 여유지를 많이 두라고 했어요. 그래서 외국인 투자가 들어올 땅을 비워 뒀습니다. 기업이 들어올 땅 347만㎡ 중 삼성·한화·롯데·웅진이 차지할 297만㎡를 제외한 50만㎡가 그 땅입니다. (기업이나 대학 등에) 땅을 많이 줘 땅 장사한다는 말도 듣지 않게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고려대와 KAIST의 땅을 요청량보다 줄였지요. 대학 부지가 350만㎡인데 두 대학에 100만㎡씩을 배정하고 150만㎡은 그냥 놔 뒀어요. 대학 및 기업과 계약서를 쓸 때 땅을 팔거나 배정받은 땅을 개발하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하면 토지는 환수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기업이나 대학에 땅을 너무 많이 주지 마라, 나중에 개발을 위해 유보지를 남겨 놓으라고 한 거죠.”

-이 대통령은 도시계획 분야에서 전문가 아닙니까.
“그렇죠. 잘 아시죠. 사실 세종시를 보고 ‘이런 도시는 없다. 도시로는 비효율적인 도시다’고 하시대요. 세종시 가운데는 남산보다 더 높은 산들이 있기 때문이죠. (터널이 없어) 모두 우회하도록 돼 있으니 얼마나 비효율적이에요. 나중에 바꾸려 해도 환경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터널을 뚫으려면) 환경영향평가 등을 해야 해 시간이 3~5년은 더 걸리니까요. 건설회사 사장을 해서 그런지 금방 아시던걸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신안에 대해 “국민과 약속 어기고 신뢰만 잃었다”고 했는데 이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가 공무원으로서 그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고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할 때 반대가 많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해 결국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셨다고요.”

-세종시 신안 발표 후 TV에 출연해 세종시 문제와 관련, “버스 운전사가 지도대로 길을 가다 보니 낭떠러지인데 그대로 가는 것이 좋겠느냐”고 해 논란이 됐는데요.
“저는 쉽게 설명해야겠다는 마음에 말한 것인데 말이 확 퍼져 입장이 난처해졌습니다. 하지만 버스 운전사가 상황을 제일 많이 아는 것은 맞지요.”

-세종시 문제 국회 처리에 대해 정운찬 총리는 “될 수 있으면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향후 국회 처리 전망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중요한 것은 입주 기업들이 다 드러났다는 사실입니다. 기업의 경우 결정이 늦어지면 비용이 더 들게 되고 애로가 많죠. 그리고 정책 문제가 정쟁 이슈가 돼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은 안 좋겠다 싶어 가급적 조속하게 마무리 지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데 그게 걱정입니다. 국민에게 원안에 말만 있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또 충청 민심도 달래야 하지 않습니까.”

-세종시 신안 추진을 위해 ‘총대를 멨다’는 말도 들었을 텐데….
“그런 말은 안 들어봤는데…(웃으며). 자부심이 있죠. 누구 하나 욕먹어서 일을 바로 하면 5~10년 뒤 효과가 나타날 텐데, 그때는 잘했다고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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