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내리는 잦은 비가 스타벅스 키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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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호 22면

미국 시애틀 시내에 위치한 39스타벅스 1호점39 매장의 내부 모습. 한국 스타벅스 제공

‘시애틀(Seattle)’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 애호가라면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 주연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보잉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MS와 보잉의 본사가 모두 시애틀에 있다. 아니면 스타벅스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전 세계 51개국에 1만7000여 개 매장을 갖춘 글로벌 프랜차이즈 업체의 시작은 1971년 시애틀 시내의 조그마한 가게였다.
세 가지 답을 하나로 묶는다면? 커피다. 왜 그런지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시애틀에서는 왜 잠을 못 이룰까. 시애틀은 미국 북서부의 끝, 캐나다와 인접한 곳에 위치한다.

커피의 도시 미국 시애틀

서안해양성 기후 덕에 겨울에도 크게 춥지 않다. 그러나 바다에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인근 산맥에 부딪치면서 자주 비를 뿌린다. 여름을 빼곤 거의 우기가 계속된다. ‘비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다. 비가 부슬부슬 오면 체감온도는 내려가고 기분은 다운된다. 추운 느낌과 우울한 기분을 바꾸려면 커피가 필요하다. 비와 커피, 어울리는 조합이다. 그렇게 기분전환을 위해 마신 커피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것은 아닐까. 혹은 잠 못 이루다 깨어나 커피 한 잔을 찾는 것은 아닐까. 시애틀이 속한 워싱턴주의 커피 소비량은 미국 내에서 캘리포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애틀은 인구 60만 명의 도시지만 시내와 근교에 MSㆍ보잉ㆍ아마존(세계 최대 온라인 상거래 업체)ㆍ코스트코(회원제 할인점) 등 본사가 위치해 있다.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회사가 많다. 커피를 찾는 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시애틀에서는 손에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또 이들 직장은 연봉 수준도 높은 편이다. 흔히 저소득 계층으로 분류되는 흑인 비중도 낮다. 워싱턴주의 100명당 흑인은 3.2명에 불과하다. 인스턴트커피보다 비싼 에스프레소 커피를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셈이다.

스타벅스와 같은 카페 문화가 발달한 것도 문맹률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 센트럴코네티켓주립대학의 조사에서 시애틀은 미국 69개 주요 도시 가운데 문맹률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과 2006년에는 가장 낮은 도시로 꼽혔다. 미 통계국에 따르면 25세 이상 인구의 54%가 대학 졸업자일 정도로 교육 수준이 높다. 1인당 독서량도 시애틀이 가장 많다. 책을 보거나 쉬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카페를 찾을 수 있는 소비자층이 두텁다는 의미다. 워싱턴주의 100만 명당 스타벅스 매장 수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첫 번째는 55만 명의 인구가 밀집한 워싱턴DC다.

스타벅스 외에도 시애틀 시내 곳곳에는 커피 매장이 가득하다. 블록마다 2~3개씩 다른 커피 체인이 있다. 스타벅스의 ‘고향’다운 풍경이다. 시애틀스베스트커피(2003년 스타벅스에 인수)ㆍ털리스(Tully’s) 등도 시애틀에서 태동했다.

시애틀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유별나다. 스타벅스를 세계적인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로 키워냈지만 지나친 글로벌화로 인한 몰개성화에는 반기를 들고 나섰다. 스타벅스보다는 동네 카페를 찾자는 ‘반스타벅스’ 운동까지 벌인다. 이 같은 움직임에 스타벅스도 대응책을 마련했다. 스타벅스 이름을 감춘 매장, 일명 ‘스텔스(stealth) 스타벅스’를 지난해 시애틀에 시범 오픈했다. 동네 카페 개념으로 스타벅스 로고를 모두 감추고 자동 분쇄기가 아니라 바리스타가 손수 갈아 만든 에스프레소를 제공해 초창기 스타벅스 분위기를 살리겠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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