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BOOK] 한계에 도전해 역사에 남은 서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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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
이한 지음, 청아출판사
284쪽, 1만3000원

양반 아버지와 양민 어머니 사이의 서자(庶子)와 노비를 비롯한 천민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는 얼자(孼子). 이들을 아우르는 ‘서얼’은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제약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반쪽짜리 신분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온전한’ 주인공이다. 『나는 조선이다』『다시 발견하는 한국사』를 썼던 저자는 서얼들의 역사, 글과 일화를 망라한 『규사(葵史)』등 사료에 근거해 역사의 그늘에 있던 서얼들을 조명했다.

조선 500년을 통틀어 가장 성공한 서얼로 꼽히는 유자광(1439~1512·세조·연산군 때의 문신)의 삶은 수없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초특급 롤러코스터’였다. 유자광은 타고난 신분을 넘어서 타고난 생존본능, 즉 동물적인 직감과 완력, 탁월한 화술로 다섯 임금을 섬기며 총애를 받았다. 비록 후세에 떳떳한 롤 모델은 아니었지만 서얼들에게는 희망을 심어준 ‘어둠속의 영웅’이었단다. 서얼녀로 태어났으면서 정경부인까지 지낸 정난정( ? ~1565)), 임진왜란 당시 용감하게 싸우다 목숨을 잃은 유극량(? ~1592), 자신의 불운한 처지를 학구열로 풀어낸 이덕무 등도 있다.

조선은 사회의 안정을 위해 적서 차별을 유지했다. 서얼의 희생 따위는 당연하게 여겼다. 저자는 서얼은 “조선 사회와 결혼제도의 부조리가 수 백년 년에 걸쳐 만들어낸 ‘기형적인 계층”이라고 꼬집었다 “서얼의 삶 자체가 자신들의 한계에 도전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설명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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