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 일궈낸 콜 전 총리 통일 업적 과대포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헬무트 콜(사진)은 독일 통일을 앞장서서 일궈낸 재상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통일 총리 콜을 평가절하한 책이 나왔다. 독일의 유명 언론인 카를 후고 프루이스가 통일 14주년을 맞아 '헬무트 콜 - 통일 총리의 신화'라는 신간을 펴냈다. 그는 콜의 기민련 당수 초기 시절인 1974~77년 대변인을 역임한 인물이다.

책은 "콜이 77년 이후엔 기민련의 정강정책에서 통일이라는 목표를 삭제하려 부단히 시도했다"며 "나중엔 통일을 도우려는 모스크바의 의도에 주목했던 정치적 친구들의 모든 충고들에 귀를 닫았다"고 밝혔다. 새로운 주장도 제기됐다. 88년 10월 당시 소련 지도자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비밀 대화에서 동.서독 통일을 제안했으나 콜이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89년 봄엔 안드레아스 마이어 란트루트 당시 모스크바 주재 독일대사가 통일이 매우 임박했다는 상황을 보고했으나 당시 콜 정부에선 아무도 이에 반응하지 않았다고 프루이스는 소개했다. 프루이스는 "콜이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에서 90년 통일 사이에 동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이해하지 못할 정책을 결정하기도 했다"면서 "이는 시대적 징표들을 전혀 읽지 못함을 드러내 주는 실책"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실책의 배경에는 콜의 권력욕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콜은 이 격동의 시기에 '잠깐 문이 열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독일의 재통일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프루이스는 "콜이 가장 깊숙한 내심에선 통일을 원했을지도 모르며, 그가 '경륜있는 정치인'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지만 최소한'통일 재상'이라고 불리는 일은 적합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콜이 통일 이후 권력에서 밀려날 것을 두려워했다고 지적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