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더불어] 교문 밖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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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7세인 영진(가명.여)이는 지난 3월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서울 P고교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꿈인 영진이는 "쓸데없는 과목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정작 좋아하는 그림에는 몰두할 수 없는 교과과정에 싫증이 나 자퇴했다" 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명문 S고에 다니던 성곤(가명.18.남)이는 성적이 반에서 5등 안에 드는 모범생이었지만 이달 말 자퇴서를 낼 계획이다.

그 이유는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하며 왕따시키기 때문' 이라고 했다. 학창시절의 단꿈에 젖어 있어야 할 10대의 나이에 자퇴서를 내고 교문 밖에서 떠도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획일화된 교과 과정에 반발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겠다며 자퇴서를 제출하는 학생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일반계 고교의 경우 1999년에는 1만3천9백5명의 학생이 교과과정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가정 형편 등으로 학교를 떠났지만 올해는 7천여명이 늘어난 2만1천5백98명이 벌써 자퇴.휴학하거나 제적됐다.

이들을 포함해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를 떠나는 학생은 한 해 평균 중학생 2만명과 고등학생 5만명 등 7만명.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적성을 찾아 꿈을 키우기보다 탈선과 범죄의 나락으로 추락하곤 한다.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고, 이들이 찾을 수 있는 전국의 대안학교도 수용 인원이 5천여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술집 삐끼.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여학생인 경우는 원조교제 등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자퇴생 대다수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퇴를 후회하며 재입학을 원하지만 제도상의 장애물에 걸린다.

자퇴한 학교에만 재입학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학교가 재입학 허용을 꺼린다.청소년보호위원회의 양동교(梁東敎)사무관은 "자퇴.중퇴생들을 지도할 대안학교를 활성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는 2차, 3차 학교가 발달돼 이들에게 한두 번씩 재도전의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장정훈.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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