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또 개헌론…야 "물타기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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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가 오랜만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에 대해 입을 뗀 것이 '밀약설 부추기기' 로 비춰졌다.

그러자 JP측은 난처해 했고 李총재는 "기가 막힐 일" 이라고 불쾌해 했다.

JP가 4일 저녁 기자들에게 지난 7월 골프장 회동 건(件)을 꺼내면서 "李총재와 7, 8분 동안 따로 만나 자민련 교섭단체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고 한 데 대해 李총재는 "30초도 따로 안있었다" 고 거칠게 반응한 것이다.

밀약설 파문의 재연조짐은 5일 JP 본인을 비롯해 자민련 당직자들이 나서서 진화한 덕에 하루 만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JP의 '내각제 개헌-이회창 초대 총리' 발언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정국관리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는 시각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李총재측도 "내각제 개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소리" 라고 일축하면서도 JP가 이 시기에 그런 말을 한 배경을 궁금해 했다.

JP의 발언은 평소 말하던 내각제 원론을 휠씬 넘어섰다. 그는 "李총재가 자민련에 동정심을 갖고 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시기가 무르익으면 (내각제가)될 것" 이라고 주장했다.

"다수당에서 총리가 나올 것이고, 영남 의석수가 호남보다 많기 때문에 李총재가 과욕만 부리지 않는다면 초대 내각 수반이 될 것" 이라고 구체적으로 풀어낸 것.

李총재가 자민련을 밀어주면(교섭단체 만들기), 자신은 李총재의 내각제 집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뜻으로 자민련 일각에서 받아들였다.

자민련 당직자는 "이회창 초대총리론은 JP의 마음 한 구석에 있던 생각이 튀어나온 것" 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정국이 흘러가면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이 쉽지 않다는 게 JP의 판단" 이라며 "그런 상황을 대비해 '킹메이커 역할' 을 하려는 JP 의욕의 표현" 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金대통령과 벼랑끝 대치상태인 한나라당의 반응은 싸늘하다. 김기배(金杞培)사무총장은 "그 사람(JP)은 뒤로 물러나 가만히 있어야 할 사람" 이라고 흥분했다.

정기국회까지 포기하고 DJ정권과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는 시점에 "웬 물타기냐" 는 거부감이다.

그러나 李총재의 다른 측근은 "YS의 조언대로 2002년 대선 국면에선 JP를 최소한 중립화시켜야 한다" 고 했다.

그는 "JP가 李총재를 개헌논쟁에 유인하려는 것 같다" 고 경계하면서도 "그가 어떤 식으로든 '이회창의 힘' 을 인정한 대목은 중시해야 한다" 고 덧붙였다.

다른 측근들은 내각제 개헌론에 대해 "JP가 최근 민주당 김영배(金令培)의원, 청와대 한광옥(韓光玉)비서실장과 만난 후 한 발언이어서 金대통령의 의중이 간접적으로 실려있는지도 신경쓰인다" 고 했다.

전영기.김정하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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