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월북 취재를 꿈꿨던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압록강이 꽁꽁 얼어있던 어느 날 월북을 고민했다. 탈북자 취재를 위해 투먼·창바이·퉁화·단둥을 따라 압록강 2000리를 달리던 1996년 1월이었다. 중국어도 못하고 중국 물정도 어두웠던 기자에게 30대 중반의 중국 동포는 “(북한군에게) 1만 달러만 먹이면 밤중에 저쪽 마을을 잠입 취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귀가 솔깃했다. 지인의 소개에다 의형제까지 맺었던 사이라 별 의심은 없었다.

옌지에서 들뜬 목소리로 서울 데스크에게 전화 보고를 했다. 그 순간 꿈은 화들짝 깨졌다. “너, 미쳤니? 헛소리 말고 빨리 들어와.” 의욕 과잉이었다.

그 무렵부터 탈북자 문제는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크고 작은 탈북자 뉴스를 취재하고 접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들의 상처와 설움이 너무 깊다. 얼마 전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최성용)이 공개한 두 장의 사진은 탈북자 문제의 긴박감을 다시 일깨워줬다. 중국 공안에 잡혀 강제 송환을 앞두고 범죄자처럼 서 있는 두 명의 24세 동갑내기 여성(최영애·윤영실씨)을 보면서다. 그들의 가슴 앞에 붙은 ‘08099’ ‘08097’이라는 다섯 자리의 수감번호는 가슴을 때렸다. 최성용 대표는 “최씨는 세 번이나 탈북해 송환되면 처형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끌려가 죽었을까.

기자는 지난 15년간 탈북자를 취재하느라 중국과 동남아를 가곤 했다. 그러면서 품은 의문이 하나 있다. 중국 동포, 특히 북·중 국경의 동포들은 왜 조건 없이 탈북자들을 도울까? 같은 동포여서? 아니다. 그들에겐 동병상련의 과거가 있다.

1960년대 중국 사회는 마오쩌둥의 극좌노선 때문에 극도의 혼란과 굶주림을 겪었다. 중국 동포들은 먹을 것을 찾아 몰래 압록강을 건넜다. 옌지의 한 동포가 들려준 실화다. “예닐곱 살 때 아버지와 함께 북한 친척 집에 가서 실컷 얻어먹고 강냉이 한 자루를 메고 강을 넘는데 (중국)경비병에게 잡혔다. 아버지를 무릎 꿇려놓고 몽둥이로 때렸다. 강냉이 자루까지 뺏겨 우리는 엉엉 울면서 집에 돌아갔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충격적이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조선족도 우리 동포다. 배고픈 설움이 제일 큰데 우리가 덜 먹더라도 그들을 도와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중국 동포들은 그런 은밀한 추억을 잊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새 세상을 찾으러 온 탈북자를 제대로 포용하고 있는가. 탈북자 2만 명 시대를 맞이한 지금, 냉정한 평가는 C학점 이하다. “차라리 중국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말까지 나오니 말이다. 성공한 사람보다 무력감과 소외감에 빠진 빈곤층이 훨씬 많다. 탈북자 밀집 지역은 슬럼가로 변하고 있다. 지난해 635억원인 탈북자 관련 예산으론 그들을 일으켜 세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환상이 컸던 만큼 좌절도 클 것이다.

탈북자 문제는 인권과 통일이란 두 시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탈북자를 강제 송환할 때마다 중국에 대해선 엄정하게 따져야 한다. 필요하면 국제무대에서 공론화하자. 중국 정부가 북한의 비위를 맞추려 국제법과 관례를 무시하는 한, 탈북의 비극은 끊이지 않는다.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이명박 정부는 중국에 구걸하듯 교섭하던 역대 정부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탈북자 지원대책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장차 북한 주민에게 시장경제·자본주의를 북한식으로 설명하도록 다양한 성공모델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들이 지금처럼 변방에 머물다간 훗날 ‘체제 전도사’가 되기 어렵다. 그러려면 12주 과정의 하나원 교육과 쥐꼬리만 한 생계비 지원만으론 안 된다. 똑똑한 20∼30대 대졸자도 취업 못하는 마당에 ‘화성’ 같은 남한에서 경쟁사회의 논리를 강요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재활과 취업을 위한 교육·훈련기간을 2∼3년으로 늘리고 그들을 돕는 다양한 방안을 개발해야 한다. 가난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자녀교육 지원도 중시해야 한다. 다행히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10월 ‘1년 이상 교육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권력의 과도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체제가 안착할지 주변국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 체제가 삐거덕댈 경우 북한 주민들의 민심은 한반도 미래를 좌우할 결정적 변수다. 한반도 유사시 그들에게 한국과 중국을 놓고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느 쪽에 표를 던질까. 남쪽에 온 탈북자조차 포용하지 못하면서 북한 인권과 통일을 거론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이양수 국제 에디터 yaslee@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