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자니 방사능 샐라…놔두자니 여론끓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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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 12일 바렌츠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승무원 1백18명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3일을 희생자 애도의 날로 지정했다고 크렘린이 밝혔다.

한편 시체 및 쿠르스크호 처리가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또 러시아 해군의 무능과 정부의 늑장 대응을 질타하는 국내외 여론이 푸틴을 압박하고 있다.

◇ 인양작업=러시아 해군은 노르웨이 심해 구조팀이 21일 쿠르스크호 내부 탈출용 해치 부근에서 승무원 시체 한구를 최초로 발견, 수면 위로 인양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노르웨이 등 국제사회에 시체 인양작업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선체 인양은 시체 인양이 마무리 되고 3주 뒤에나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작업 역시 서방의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드는 데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길이 1백55m에 이르는 쿠르스크호는 내부에 물이 다 찰 경우 총 무게가 2천4백t에 달해 인양 도중 선체가 파열돼 방사능이 누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그대로 수장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잠수함에 난 모든 균열을 봉합하고 원자로는 부식과 수압 등을 견딜 수 있는 물질로 완전 밀봉해야 하기 때문에 역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 뿐 아니라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 들끓는 러시아 정가=러시아 의원들은 정부와 별도로 독립적인 진상조사단을 결성할 것을 촉구했다. 진보정당 야블로코 연합 등은 의회에 조사기구를 설치하고 군에 대한 민간의 감시를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 언론들은 러시아 당국이 사고발표를 이틀이나 늦췄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 서방의 구조작업 지원제의를 처음에 거절했던 것을 두고 푸틴 정부에 대한 비난을 연일 퍼붓고 있다.

사고 발생을 알고도 푸틴 대통령이 휴가를 즐기는 등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당황한 푸틴은 사고자 가족에 대한 지원금을 애초 책정한 금액의 세배인 1백50만루블(약 6천만원) 로 확대하도록 지시하는 등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 국제사회의 애도=미국으로 이민 간 러시아 교민들은 희생자 유족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에 나서 21일까지 6만달러의 성금을 거둬들였다.

또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는 발표가 있은 후 각국은 잇따라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미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앨 고어 부통령은 "엄청난 상실감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러시아 국민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 면서 "미국인 모두는 러시아 국민들과 함께 비통함을 느끼고 있다" 고 밝혔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성명을 통해 승무원 및 잠수함 인양작업에 보내준 국제사회의 지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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