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사 '도덕적 해이' 사실로 드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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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기업의 오너 및 회사간 부당거래와 부실 계열사 지원이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상당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서면으로만 이뤄진 이번 조사에서 상당수 탈법.위법 혐의가 적발된 점에 비춰보면 워크아웃 기업의 오너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란 게 업계의 평가다.

거래계좌나 경영진을 본격 조사할 경우 훨씬 많은 탈법.위법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워크아웃 기업에 지원된 자금이 경영정상화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상시적으로 감시할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 드러난 부정실태=미주.진도.신호그룹 오너는 계열사의 증자대금 마련을 위해 계열사와 거래를 하는 형식으로 회사 돈을 끌어다 쓰고도 정작 회사에 팔기로 한 부동산의 소유권 이전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상희 미주그룹 회장은 자신의 땅을 1997년 12월 24억원에 팔기로 하고 그동안 선수금을 23억원이나 받았으나 1억원의 잔금이 남았다는 이유로 소유권 이전을 미뤄왔다.

김영진 진도 회장은 소유토지를 계열사인 진도종합건설에 팔면서 땅값을 공시지가의 7.8배나 받았다. 이 땅은 아파트건설 용도로 97년에 팔았지만 아직 사업계획 승인도 받지 못한 상태다.

이순국 신호그룹 회장은 영진테크를 인수하면서 전 사주의 보증채무를 계열사인 신호제지가 대신 갚아주도록 해 '땅짚고 헤엄치기' 로 회사를 늘렸다.

신호전자는 미국과 영국 현지법인을 팔고도 채권회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1천4백만달러를 못받고 있고, 진도는 중국 현지법인 매각대금 중 2천7백만달러의 사용처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동아건설.한창은 오너가 사재출연을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

◇ 느슨한 채권단의 감시=당초 워크아웃 계획이 실패로 끝나 채무를 재조정해준 기업 18개 가운데 8개사만 기존 경영진이 물러났는데도 채권단은 이를 그대로 인정했다.

갑을.동국무역.동방.진로 등의 채권단은 경영실적이 부진한 기업주 처벌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은행들이 퇴임 임원을 워크아웃 업체의 사외이사로 낙하산 인사를 한 사례도 65건이나 적발됐다. 이중 38명은 아예 단독 후보로 추천됐다. 이 가운데 8명은 추천위원회조차 거치지 않고 사외이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 금감원의 솜방망이 처벌=98년 7월 워크아웃이 시작된 이후 채권단이 워크아웃 업체에 퍼부은 돈만 채무조정 85조6천억원, 신규대출 4조8천억원에 달한다.

이같은 자금을 지원해 주고도 그동안 워크아웃 업체가 지원자금을 경영정상화 계획에 제대로 쓰고 있는지 검사를 한차례도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감독당국의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이다.

그나마 이번 조사도 기업 검사권이 없다는 이유로 관련 서류조사만 했을 뿐이며, 혐의가 발견된 업체의 기업주에게 진술조차 받지 못했다.

금감원측은 "기업의 탈세혐의나 위법혐의는 국세청이나 검찰만 조사할 수 있어 계좌나 관련자를 직접 조사할 수 없었다" 고 해명했다.

그러나 워크아웃 업체와 채권단간에 맺은 관리계약에 따르면 채권단이 얼마든지 해당업체와 기업주에게 자료를 요구하고 필요하면 관련자 면담도 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의지만 있었다면 더 엄밀한 조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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