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이산가족 북측 방문단 1백51명이 서울을 방문함에 따라 1990년 이후 남쪽 땅을 밟은 북한사람은 모두 9백92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1990년 9월 제1차 남북 고위급회담 때 연형묵(延亨默)전 정무원 총리가 북측 대표단과 함께 서울을 방문한 이래 올 6월말까지 15차례, 8백41명이 방한했다.
정부는 북측의 방한신청을 딱 한 차례 거부한 적이 있다.90년 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회에 참석하려던 조선기독교도연맹 서기장 고기준 목사 일행 10명이었다.
북한주민의 주요 방한 사례로는 ▶남북 고위급회담(90~92년)▶남북 통일축구대회(90년)▶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 단일팀 평가전(91년)▶김달현(金達玄)정무원 부총리 일행의 산업시찰 방문(92년) 등이 있다.
그러나 93년 두만강개발 계획 관련 통신분야 전문가 회의와 자원.산업.환경분야 전문가회의를 마지막으로 94~98년까지는 단 한명도 오지 못했다.김일성(金日成)주석 사망과 핵 문제 등 남북관계 경색이 원인이었다.
북측의 남한방문은 지난해 12월 제2차 통일농구경기대회 참가차 선수 등 62명이 서울에 옴으로써 재개됐다.올해엔 평양학생소년예술단(5월).평양교예단(6월) 등 2백4명이 방한했다.
목적별로는 ▶경제 4건(19명)▶문화예술 3건(2백37명)▶체육 3건(2백10명)▶고위급회담 4건(3백60명)▶기타 1건(15명) 등이다.
한편 남한주민의 방북은 금강산 관광을 제외하고도 남한을 방문한 북한주민의 10배가 넘는다.
98년 국민의 정부가 '정경분리 원칙' 을 표방하면서 기업인 등의 방북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 90년 이후 99년 말까지 북한을 방문한 남한주민은 1만1천3백21명이며 98년 11월 시작된 금강산 관광객만도 올들어 20만명을 넘어섰다.
김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