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고향땅 밟게 되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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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8.15 이산가족 상봉단의 방북을 이틀 앞둔 13일.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한국 언론사 사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이산가족 교류확대 등에 구체적인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자 시민들은 '변화 속도가 놀랍다' 는 반응이었다.

실향민들은 金위원장이 ▶9, 10월 이산가족 추가 교류▶경의선 철도 신속 복원▶한라.백두산 교차관광 및 남북 직항로 개설 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지자 "그게 정말이냐" 며 크게 환영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 도착, 방북을 기다리고 있는 지방 거주 8.15 방북단 67명의 감회는 남달랐다.

딸을 만나러 방북하는 임연환(84.대전 대덕구 오정동)씨는 "이번이 마지막인줄 알았는데 다음에 꼭 고향집을 가보기 위해서도 오래 살아야겠다" 고 말했다.

이번 방북 명단에서 1백1번째로 뽑혀 방북의 꿈이 무산됐던 우원형(禹元亨.67)씨는 "다음달에 고향 땅을 밟을 기회가 생긴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고 기뻐했다.

禹씨는 상봉단에 포함된 장이윤(張二允.72)씨의 모친(1백9세)이 지난 9일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직계가족 우선 방문' 원칙에 따라 방북할 기회가 생겼으나 張씨에게 양보했었다.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 묵고 있는 張씨는 "禹씨에게 진 빚을 다소나마 벗게 됐다" 며 "다음 상봉단 교환 때는 禹씨가 제일 먼저 가야 한다" 고 말했다.

개성이 고향인 김동민(金東玟.서울시립대 명예교수)씨는 "아무리 화해무드지만 50년 이상 반목하고 체제 불신이 지속돼 왔는데 이산가족간 가정방문까지 가능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고 말했다.

金씨는 "고향을 방문해 옛 친구도 만나고 멱 감던 실개천에도 가보고 싶다" 며 기뻐했다.

실향민이 아닌 정명협(63.경기도 남양주군 진건면)씨도 "생전에 북한 땅을 통한 백두산 관광을 꿈꿔 왔는데 이뤄질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며 "남북 화해시대가 본격 개막된 것 같다" 고 평가했다.

일천만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회 부위원장 李재운(64)씨는 "매달 교환이 이뤄지고 내년에 고향까지 갈 수 있다면 정말 경하할 일" 이라며 "이산가족간 교류를 정기화하기 위해서는 우편협정.통행협정 체결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 박정규(朴井圭)이산가족대책본부장은 "있는 힘을 다해 이산가족들의 정기 상봉을 도울 것" 이라며 "다음달 방문이 성사된다면 이번에 최종 명단에서 탈락한 38명을 우선 고려할 방침" 이라고 밝혔다.

장정훈.김승현.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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