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3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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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30·끝. 판소리 전수관 건립

1997년 11월 충남 공주시 무릉동 370번지에서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 상량식이 열렸다. 이곳은 1916년 7월 12일 내가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일곱살 때까지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이다.

상량식이 끝나고 얼마 후 나는 서울시 서초구 방배3동 맏아들 집에서 무릉동으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며 후학 양성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공주시.충청남도.문화관광부의 도움으로 97년 초에 착공한 전수관은 지난해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IMF사태로 예산 확보가 난항을 겪으면서 연기됐다.

앞으로 2년 후쯤 기숙사.생활관.전수관.공연장.주차장.화장실을 갖춘 판소리 센터가 제 모습을 갖출 것이다.

평일에는 판소리를 가르치고 주말에는 판소리 상설공연도 열어 전통문화와 관광을 결합한 명소로 만들고 싶다.

전수관은 부지 2천4백평 규모로 총예산은 20억여원이 소요된다. 나도 판소리 공연으로 모아온 2억원을 헌납했다. 전수관.생활관 등 2개동은 이미 완공됐고 지금은 화장실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빨리 완공하기 위해 혼자 동분서주하지는 않는다. 공사 현장에 가서 한 마디 참견도 하지 않고 있다.

주위에서는 문화관광부 장관이나 국무총리를 만나 보라고 권하지만 손 벌리는 사람이 어찌 한둘이겠는가. 좋은 일이니 때가 되면 저절로 풀릴 것이라 믿는다.

98년 충남 공주로 완전히 낙향한 후에는 외부활동보다는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내가 인간문화재로 지정을 받은 지 25주년이 되던 뜻깊은 해다.

열흘에 한번 꼴로 서울 아들 집에 묵으면서 내가 명예종신단원으로 있는 국립극장이나 원로사범으로 있는 국립국악원에 들러 후배들을 격려하기도 하지만 고향에서 지내는 게 더 편하다. 틈나면 이웃 저수지에서 민물 낚시를 하면서 건강을 다지고 있다.

원래 나는 서울 종로3가 탑골공원 근처에 전수소를 마련해 제자들을 가르쳐 왔으나, 낡고 비좁은 데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들었다.

이곳에 판소리 전수관을 세우게 된 것은 공주가 내 고향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지만 전라도 못지 않은 충청도 판소리의 맥을 잇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경 출신의 명창 김성옥과 그의 아들 김정근, 손자 김창룡.김창진, 서천 태생의 이동백, '자진 사랑가' 로 유명한 고수환 등이 모두 충청도 출신이다.

현재 제자인 김양숙과 함께 운영 중인 전수관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지금 수강생은 20~30명 정도 된다.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주 2~3회 레슨을 받고, 멀리 사는 사람들은 토요일에 들러 배우고 전수관에서 하룻밤 자고, 일요일 돌아가기도 한다.

오는 9월 17일 공주시 주최로 제1회 박동진 판소리 명창대회가 열린다. 예선은 이곳 전수관에서 열고 본선은 공주문화회관에서 치를 예정이다. 올해는 대상이 국무총리상이지만 내년부터는 대통령상으로 격상될 것으로 본다.

전수관이 완공되면 참가자.심사위원들이 이곳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예선과 본선을 치를 수 있다. 완창 무대를 거친 뒤에야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전주 대사습놀이나 마찬가지다. 완창 때문에 후배들이 고생하고 있지만 그 덕분에 소리꾼이 제대로 대접받는 점도 없지 않다.

나는 여생을 바쳐 전수관이 우리 판소리의 맥을 이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찾는 문화공간이 되도록 가꿀 것이다.

몇 년이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무대에서 우리 가락을 전하다 죽는 것이 소원이다.

박동진 <판소리 명창>

정리=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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