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원로 서양화가 변종하옹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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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국 서양화단의 거목 석은(石隱)변종하(卞鍾夏)옹이 지난 29일 서울대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74세.

고인은 지병인 당뇨 때문에 1987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1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극적으로 깨어나 89년 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임경식(62)이목화랑 대표는 "그림은 물론, 문학.음악.과학.의학 등 다방면에 걸쳐 풍부한 지식을 가졌던 분" 이라며 "병마와 싸우고 난 뒤 작업이 더욱 강렬해지고 완성도도 높아졌는데…" 라며 안타까워했다.

외아들 태호(46.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씨는 "아버지는 항상 '마음이 기름져서는 좋은 예술가가 될 수 없다' 고 가르치셨다" 고 회고했다.

고인이 97년 자신의 호를 딴 비영리재단인 석은미술문화재단을 설립, 자신의 작품 1백점(한국화랑 협회 추정가격 60억원)과 부동산 등 모든 재산을 기탁한 것도 이같은 인생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상속포기 각서까지 쓰기도 했다.

고인의 대표작은 71년 대한미술협회전에 출품한 '돈키호테 이후-독재자' . 독재시절을 풍자한 이 작품으로 그는 전시장에서 중앙정보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독재자는 누구를 말하느냐" 는 추궁에 "박정희씨" 라고 당당하게 대답, 옥고를 치를 뻔했으나 남산 어린이회관 건립문제로 안면이 있던 육영수 여사의 도움으로 하루만에 풀려났다.

임종전 "내가 지병으로 다른 사람의 빈소를 찾지못했으니 부의금을 받지말라" 고 말할 정도로 고인은 개성이 강하고 완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딸 진(眞.51)씨는 "저의 결혼식 때 트럭 3대분의 꽃을 준비할 정도로 속은 따뜻했다" 고 회고했다.

대구 출신으로 일제의 징집을 피해 만주로 건너가 신경 미술학원을 졸업한 고인은 수도여사대(현 세종대)미술학과장을 지내다 사직하고 프랑스 소르본대학에 4년간 유학을 했다. 귀국 후 홍익대, 서울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국전 부통령상.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남정숙 여사와 1남 3녀. 사위는 김용진(사업).김도균(〃).최승민(한국해양연구소 연구원)씨. 발인은 8월 1일 오전 4시. 760-2011

조현욱.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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