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조건없이 반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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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7년 전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한국의 외규장각 고문서를 반환하겠다고 약속,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그리고 얼마 후 파리 국립도서관의 담당 여직원 두명이 결사적으로 반환 예정도서를 내놓지 않겠다며 울음을 터뜨린 뒤 끝내 사표를 던져 또 다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을 두고 당시 여론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과연 자기 맡은 바에 충실한 민족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는 예찬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의 문화재를 약탈해 놓고 끝까지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추한 모습이라는 비판론이었다.

그런데 최근 보도에 의하면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한 전문가 회의에서 외규장각 도서 2백97권의 반환 형식과 방법에 모종의 타협이 이뤄졌다는 소식이다.

그 방법은 2백97권 중 유일본 64권은 비슷한 가치를 지닌 국내도서와 우선 교환하고, 나머지 어람(御覽)용 2백33권도 한국이 보관 중인 비(非)어람용 의궤와 올해와 내년에 절반씩 맞교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한마디로 어이없는 굴욕외교다. 외규장각 고문서들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병인양요 때 그들이 무자비하게 약탈해간 것이다.

따라서 원소유주의 반환 요청이 있을 때는 기꺼이 돌려주는 것이 문화대국을 자처하는 프랑스 정부의 도리일 것이다.

이렇듯 충분한 명분을 갖고서도 우리 정부는 왜 당당하게 반환하라고 요구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테제베(TGV)도 좋고 기술이전.경제협력도 다 좋지만 무엇이 꿀리고 급해서 되레 굽실거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같은 우리 정부의 안달하는 모습에 프랑스 당국도 1993년 당시 당연히 반환해야 한다는 여론을 무시한 채 영구임대 형식으로 돌려준다고 제안했는가 하면, 이번에도 등가교환이란 명목을 들먹거리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이른바 유럽 선진국들의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가보면 제3세계 국가에서 약탈했거나 속여서 헐값으로 사들인 전시물을 숱하게 볼 수 있다.

즉 제국주의를 앞세워 약소국가의 귀중한 문화재를 다 빼앗아 가고서도 버젓이 문화민족인 양 행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는 빼앗긴 문화재를 당당히 돌려받아야 한다. 식민지 시대의 어두운 터널을 가까스로 벗어난 뒤 곧이어 닥쳐온 전쟁과 가난 때문에 우리 민족이 귀중한 문화유산에 신경 쓸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귀한 서적들을 헐값에 해외에 팔아넘기기도 했다. 실로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경제적 어려움은 어느 정도 극복했으니 이제 문화민족의 긍지를 되찾아야 할 때다. 더욱이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 하지 않는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한다고 저절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문화민족으로서 프랑스 정부에 보다 당당하게 주장해 떳떳이 문화재를 돌려받자.

정성구 <총신대 총장 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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