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읽기] 방송의 그린벨트를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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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TV는 틀기만 할 게 아니라 가끔 비틀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TV가 건강해진다. TV가 건강해야 사회도 건강해진다. 건강을 위해선 적당한 운동이 필요하듯이 건강한 TV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청자운동이 필수적이다.

'법의 정신' 에서 삼권분립론이 나온 것처럼 방송의 정신을 제대로 살리려면 TV를 가운데 두고 세개의 권력이 견제와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세 권력은 각각 제작자.시청자, 그리고 감시자다.

감시자 그룹은 제작자와 시청자 가운데 진정으로 TV를 사랑하고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자들의 연대다.

방송은 선거와 많이 닮았다. 시청자는 유권자다. 그들은 매일 투표한다. 문제는 정말로 괜찮은 프로그램에 투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저 구미에 맞는 프로그램의 손을 대충 들어준다.

그 점 또한 유권자의 행태와 비슷하다. 그들에게는 좋은 것과 좋아하는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특성이 있다.

시청자는 자신이 권력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권력을 잘못 쓰면 자신과 세상이 함께 병든다는 사실도 잊고 있다.

그걸 누군가 계속 깨우쳐 주어야 하는데 TV는 그 일을 제대로 못 한다. 제 밥그릇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조차도 '눈 가리고 아웅' 수준을 맴돌고 있다.

TV도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제껏 진단이 없지는 않았다. 아쉽게도 TV가 앓고 있는 질환에 대해서는 증상에 대한 진단만 무성했던 게 사실이다. 처방전이 없다는 말이다.

그 까닭을 생각해 보자. 아마도 진단하는 자가 '이야기해 봤자 씨알이 먹힐 것 같지 않다' 라고 지레 예단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저 화풀이 혹은 한풀이하듯 가끔 '짖어대고' 말면 병은 계속 고질로 향할 수밖에 없다.

씨알이 먹히려면 우선 환자(TV)를 야단치지 말고 따뜻한 시선을 지녀야 한다. 알콜중독자에게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몸을 함부로 다루었느냐고 야단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진단이건 처방이건 동어반복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맨날 하는 똑같은 이야기는 자극이 되지 않는다. 잔소리는 잔소리일 뿐이다.

TV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한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TV에도 그린벨트, 혹은 블루벨트가 절실히 필요하다.

각 방송사와 시청자단체가 합의, 일정한 시간대를 정해 그 시간만큼은 가족이 함께 시청하며 '같이 사는 세상' 에 대해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면 어떨까 싶다.

물론 그 시간에 TV를 끄고 대화를 나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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