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자’.
에코(eco) 딱지를 붙이고 매장에 나온 영국 문구 브랜드 페이퍼체이스의 재생지 수첩. 자연을 그려 넣은 표지와 종이의 품질이 훌륭하고 세련됐다. ‘착한 디자인’이라고 해서 멋과 기능을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과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하고 슬쩍 책임을 피하고 싶은 두 마음이 싸울 때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1760년 무렵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석탄·가스 등 천연자원으로 증기기관과 기계를 돌려 보니 열효율도 높고 얼마나 편리하고 신기합니까. 19세기 중반에는 석유까지 합세해 예전보다 훨씬 싸고 쉽고 빠르게 물건을 만들어 팔게 됐습니다. 이래로 전에 없던 경제 성장을 이루며 지금껏 달려왔지요. 이런 공업화의 현장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생겨났습니다. 디자인은 인간의 삶을 보다 아름답고 편리하도록 돕는 데 주된 목적을 뒀지요. 그러다 문득 뒤돌아보니 석유와 석탄은 마냥 끝없이 파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네요. 게다가 환경오염 문제도 심각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주목받는 것이 ‘친환경 디자인’입니다. 비슷한 듯 헷갈리는 다양한 명칭이 뒤섞여 들립니다. 그린 디자인, 에코 디자인, 친환경 디자인, 3R 디자인, 지속 가능한 디자인 등 이름도 제각각 다양하네요. 이들은 모두 멋진 외양과 편리한 기능뿐 아니라 제품의 기획과 재료 선정, 제품의 사용 기간과 폐기 후의 재사용, 재활용 여부 등 제품 수명 전반에 걸쳐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한 디자인을 뜻합니다.
그린 디자인(green design)은 나무와 풀 등 자연의 대표 색으로 인식되는 녹색을 차용한 이름으로 친환경 디자인(environmentally-friendly design)과 함께 흔히 쓰입니다. 다만 자연에 얼마든지 존재하는 핫핑크나 검정 따위의 다양한 색상이 소외된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친환경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가장 크게 아우르는 편이지만 왠지 딱딱하고 경직된 분위기입니다.
녹고 있는 빙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을 그렸다.
헷갈리는 이름 사이에서 꼭 들어맞을 이름을 생각해 봅니다. 앞서 말한 ‘착하게 살자’처럼 인간 본연의 의지를 반영한 ‘지구를 생각하는 착한 디자인’은 어떨까요? 친환경에 대한 강요보다는 나의 안목과 수준에 맞는 삶을 즐기면서 지구를 위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요.
디자이너 박규리
박규리는 영국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미술대학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현재는 단국대에서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창의성이 넘치면서 환경까지 생각하는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며 ‘지구를 생각하는 착한 디자인’ 제품 사례를 모으고 있다.
앞으로 2주에 한 번씩 지구를 위한 발걸음이 자연스럽고 쉽도록 지난 1년간 유럽과 미국 등지를 다니며 각국에서 수집한 착한 디자인을 소개하려 합니다. 가격도 착하고 몸매도 착한 요즘, 세상에 자연에 대한 진정한 배려를 담은 ‘착한 디자인’이 여러분께 의미 있고 친근하게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2주 뒤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