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소송강행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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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대중공업이 현대전자를 상대로 끝내 소송을 선택한 것은 계열사끼리라도 이해관계가 엇갈려 법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양보할 경우 수천억원대의 피해를 보게 되며 주주의 반발이 예상된다. 더구나 그룹 분할 과정에서 양측의 실질적인 오너인 정몽헌 회장과 정몽준 고문의 반목이 나타나 여러 차례의 조정과 타협안이 합의를 보지 못했다.

◇ 왜 법정까지 갔나=현대중공업 이사회는 28일 현대전자의 대주주인 정몽헌 회장측이 제시한 사재출연 방식의 보전 방안이 현실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鄭회장측이 제시한 ▶현대중공업이 빚을 대신 갚고 인수한 현대투신 주식 1천3백만주의 매각을 현대증권이 주선하고▶손실이 생기면 鄭회장 소유의 현대전자 주식 8백35만8천주를 담보로 빚을 내서라도 보전하겠다는 방안을 이번 사건의 주역인 이익치 회장이 다급한 나머지 제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사회는 특히 鄭회장 소유의 현대전자 주식을 담보로 손실을 보전하겠다는 약정에 鄭회장이 아니라 그룹 구조조정위원회가 배서하겠다고 하자 '鄭회장이 배서하지 않으면 담보 주식 처분권이 없다' 며 방안의 실현성 자체를 의심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공업 이사회는 28일 '정몽헌 회장의 사재출연 보전 방안' 을 안건으로 올리지도 않고 소송 제기를 승인했다. 중공업 이사회는 또 현대증권이 현대투신 주식을 매각하도록 주선해줄 게 아니라 전자측이 아예 인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 그룹에 미칠 파장=현대는 그룹 내에서 건실한 기업으로 알려진 중공업과 전자.증권 등 우량 계열사가 분쟁에 휩싸여 가뜩이나 형제 싸움으로 훼손된 공신력과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그룹 계열사가 외자를 유치할 때 보증을 서온 현대중공업이 더 이상 보증을 서주지 않을 움직임을 보이자 국내외에서의 자금 확보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당장 현대증권은 현대투신의 주식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금융그룹인 AIG로부터 9억달러의 외자유치를 추진해 현재 실사 중이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이익치 회장이 이번 사태에 직접 당사자로 지목된데다 사태가 더 확산되면 외자유치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 우려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그동안 그룹 계열사가 외자를 유치할 때 해외 금융기관들이 현대중공업에 보증을 요구해 왔다" 면서 "그러나 앞으로는 모두 단절할 계획이며 기존 보증도 만기가 될때 재보증을 서지 않겠다" 고 말했다.

◇ 해결 실마리는=현대중공업 사태를 해결하려면 소송을 취하할만한 타협안이 나와야 하는데 현재로선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중공업 사외이사인 박진원 세종법무법인 변호사는 "현재로선 타협의 징후를 느낄 수 없다는 게 이사회의 공식 입장" 이라며 "정몽헌 회장이 담보로 내놓겠다는 현대전자 주식에 직접 배서하는 등 현실성 있는 방안이 나와야 협의가 가능할 것" 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권오갑 이사는 "주주들을 위해서 대납한 돈을 받아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손실의 일부만 보전받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며 "법원이 판단할 일" 이라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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