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맞은 도시인들 사찰수련회에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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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휴가를 이용, 산사(山寺)로 출가(出家)하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참된 '나' 를 찾아가는 단기출가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출가 기간 내내 묵언(默言)을 지키고 3천배(拜)정진을 해야 하는 등 수행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고통은 도시생활의 번뇌와 헛껍질을 벗고 또다른 나로 거듭 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단기출가는 시작부터 생활이 확 바뀐다.

사찰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기간내내 묵언, 차수(叉手.손을 깍지 끼기), 시선 하향은 기본이다. 말을 했다가는 죽비로 어깨를 맞거나 취침시간에 혼자 대웅전에서 1백8배를 해야 한다.

수행의 절정은 출가 마지막 날 밤의 3천배.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이 따르지만 마침내 이루고 나면 '눈 앞이 트이는'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19일부터 21일까지 통도사 수련회에 참가한 박영한(38.회사원)씨. "집으로 돌아오기 직전, 진신사리까지 3보1배(三步一拜.세걸음마다 한번씩 절하기)를 할 때는 젊어서 겪은 해병대 훈련보다 더 힘들었다" 며 "그러나 고행의 과정에서 일상에서 쌓인 번뇌는 티끌처럼 날아가 버렸다" 고 말했다.

지역에서는 팔공산 동화사를 비롯, 합천 해인사.양산 통도사.영천 은해사.경주 불국사 등지에서 대개 3~7차례씩 단기출가 수련회를 열고 있다.

이달초부터 시작, 이미 2차례의 프로그램을 마친 동화사는 신청이 밀려 이번 주말 열리는 3차 정원(50명)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동화사 한곤수 사무과장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탓인지 올해는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들도 많이 참가했다" 고 말했다.

22일부터 25일까지 2차 동화사 단기출가에 참가한 세무사 金모(53)씨는 매년 여름휴가를 사찰을 바꿔가며 짧게 출가한다.

金씨는 "불자는 아니지만 아내와 함께 깊은 계곡에 자리잡은 산사에서 보내는 휴가가 최고" 라고 말했다.

올 여름 모두 일곱차례 열리는 합천 해인사의 여름수련회에도 신청이 밀려 이달초 아예 접수를 마감해 버렸다.

이 사찰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 미리 예약한 사람도 적지 않아 신청을 다 받으려면 정원(1백50명)을 2배 이상 늘려야 한다" 고 말했다.

6차(총정원 1천9백명)에 걸쳐 실시하는 통도사는 이미 지난달 중순 신청을 마감했다. 이들 사찰들의 단기출가 참가자 분포를 보면 40대가 가장 많고 그 다음 30대, 20대 순이며 부부.연인끼리의 참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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