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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정부 눈치 보기 심화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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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KB금융지주 이사회를 앞둔 31일 오후 서울 명동 KB금융 본점 로비에서 취재진과 보안요원들이 사외이사들이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다. 이날 KB금융 회장 내정자에서 사퇴한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취재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종근 기자]

KB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인사 파동은 국내 금융 산업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로 선출된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임시주총 일주일을 앞두고 사퇴했다. 금융감독 당국의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다. KB금융지주는 외국인 지분율이 59%에 달하는 국내 최대 금융회사(자산기준)다.

금융계는 큰 우려를 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를 ‘시범케이스’로 보는 분위기다. 당연히 앞으로 고위 경영진을 교체할 때는 정부와 감독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더구나 금융감독원은 올해부터는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4대 은행을 포함한 12개 금융회사에 대해 매년 현장검사를 하기로 했다. 또 은행 경영진이 경영전략을 바꿀 때도 이를 미리 점검하고, 위험하다 싶으면 경영진 면담과 직접 검사까지 할 계획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금융지주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일부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감독당국이 조사를 하고 강 국민은행장이 떠밀려 자리를 내놓은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KB금융 이사회와 강 국민은행장도 감독당국이 개입할 수 있는 빌미를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초 회장 선임 과정에서 최종 후보 2명이 “선출 방식이 공정하지 않다”며 사퇴를 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또 KB금융 사외이사들은 자신들의 선임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회장 선임 과정에서 전권을 행사하는 등 권력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일부 사외이사는 주력 계열사인 국민은행과 부적절한 거래를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전직 관료 출신의 금융계 인사는 “KB금융은 정부가 대주주였던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모체로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라며 “이런 은행에서 일부 경영진과 사외이사가 금융회사를 자기 것처럼 운영하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태가 반복된다면 대외 신인도가 추락할 위험이 있다. 동국대 경영학부 강경훈 교수는 “이번 사태를 지켜본 외국인 투자가 입장에선 KB금융에 대한 투자 매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며 “만일 후임자에 관료 출신이 선임된다면 (신인도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은 당분간 최고경영자(CEO)가 없는 공백 상태를 지속하게 됐다. 강 행장이 KB금융 회장 대행 지위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이번 인사 파동으로 조직 장악력은 크게 떨어졌다. 또 강 국민은행장의 회장 선임을 주도한 사외이사진의 개편도 불가피하다. 금융위는 현재 사외이사의 임기를 5년 정도로 제한하는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다. 따라서 고위 경영진과 이사들이 핵심 사안에 대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는 힘든 상황이다. 올해엔 외환은행의 매각과 우리금융의 민영화가 예정돼 있어 은행권의 대대적인 인수합병(M&A)이 예고되고 있다. 금융계에선 KB금융이 인사 파동의 후유증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중요한 M&A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글=김원배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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