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땅 뭉갤수 없어" 1,000억 보상금 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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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상들의 체취가 담긴 땅을 지켜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택지지구로 편입될 때부터 보존할 길이 없나 고민해왔는데 주민단체의 주거환경 지키기 운동과 환경운동단체의 적극적인 권유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

자신들 소유인 숲을 깎아내고 아파트를 지으려면 차라리 그린벨트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한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죽전리 김형호(金炯鎬.67).박영안(朴永安.59).이경선(李敬善.62)씨 등 5명.

이들의 요청이 당국에 의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지만 막대한 재산상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린 결단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이 그린벨트 지정을 요청한 지역은 분당 신도시와 경기도 용인 죽전지구를 연결하는 대지산 일대 31만평(약도 참조)으로 1998년 10월 택지지구로 지정된 곳. 준농림지와 녹지가 절반 정도씩이다.

이미 환경정의 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땅 한평 사기 운동' 을 벌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 보상협상이 진행되고 있지 않지만 토지공사는 이 땅 가격이 평당 20만~50만원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어 보상을 받을 경우 그 규모가 4백억원에서 1천억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선뜻 그린벨트 지정을 요청하고 나선 것은 이 땅이 종중 땅이거나 이들이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들이어서 땅에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이다.

20만평을 그린벨트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한 김교선(金敎善.74)경주 金씨 대지종회 종회장은 "이 산을 수십만명의 종중들이 5백년 동안 지켜왔는데 하루 아침에 뭉개버릴 수는 없는 일" 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린벨트로 지정되면 산은 지킬 수 있지 않느냐" 며 "이사회에서 차라리 그린벨트로 남기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고 전했다.

대지산에 6천여평의 땅을 갖고 있는 李씨 역시 "당장의 금전적 이득과 보존 사이에서 흔들리기도 했지만 환경운동단체 등의 주장에 마음을 정했다" 고 말했다.

이곳에서 '땅 한평 사기운동' 을 펼치는 용인서부지역 택지개발지구 저지 공동대책위 김응호(金應鎬.43.공대위)위원장은 "땅 소유주들이 막대한 재산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그린벨트 지정 요청에 나선 것은 환경보호를 위한 주민들의 강력한 의지를 이해한 것" 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땅 주인들을 설득한 환경정의 시민연대 서왕진(徐旺鎭.36) 사무처장도 "토지공사가 죽전지구 개발을 시작하면 이 일대 산림 60% 이상과 농지 32%가 사라진다" 며 "분당.용인이 콘크리트로 연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지산은 지켜야 한다" 고 강조했다.

정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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