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 기다리는 가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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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 .

북한이 보내온 8.15 이산가족 상봉자 2백명의 남한측 생존자가 속속 확인되고 있는 가운데 이산가족들은 꿈에도 그리던 부모형제와 친지를 만나게 된다는 기쁨에 휴일인 17일 집안에 모여 서로 부둥켜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부모가 사망한 이산가족들은 땅을 치고 통곡했다.

북에 남동생(김치효·69)이 살아있다는 낭보를 들은 김치려(75·세무사·대구시 태전동)씨는 "돌아가신 부친이 동생이 기차를 타고 오지나 않을까 1년 동안 매일 역에 나가 기다리셨다" 며 눈물을 삼켰다.

(사진 위 왼쪽부터, 괄호안은 남한 가족)

1.김치효(김성규·부) 2.주영훈(주영관·형) 3.백남두(백락순·부) 4.임재혁(임희경·부)

(사진 아래 왼쪽부터, 괄호안은 남한 가족)

1.류렬(류경형·부) 2.안순환(이덕만·모) 3.정창모(정춘희·매) 4.오경수(오을록·부)

金씨는 "동생이 워낙 총명해 공부와 운동을 다 잘했다" 면서 "동생이 당시 경북대와 서울대를 놓고 진학 고민을 하다 50년 4월 서울대 정외과에 입학한 뒤 전쟁 중 소식이 끊겼다" 고 말했다.

북한 려운봉(66)씨의 동생 운원(63·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씨는 "텔레비전에 형을 닮은 가수 현철씨가 나오면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면서 " '형이 살아있다' 며 제사나 호적정리를 만류했던 어머니의 뜻을 저버리고 3년 전부터 제사를 모셨던 것이 가슴에 맺힌다" 고 말했다.

○…철도공무원이었던 작은 오빠 黃종문(67)씨가 가족을 찾는다는 소식에 黃종연(62·충북 음성군 읍내리)씨는 "10여년전 부모님과 큰 오빠가 모두 세상을 떠나 이제 여동생과 나만 남았다" 고 안타까워했다.

黃씨는 "유난히 정이 많았던 오빠 생각이 날 때마다 철도공무원복을 입은 오빠 사진을 꺼내 본다" 며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종문이가 돌아오면 너희들이 논이라도 조금 나눠주고 따뜻하게 맞이해야 한다' 고 유언하셨는데 아마 이날을 예견하셨던 모양" 이라고 말했다.

○…양문열(64)·정인혜(60·여·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씨 부부는 희비가 엇갈렸다. 남편은 둘째형 원열(70)씨의 소식을 들었지만 부인은 오빠 용준(71)씨의 생사를 여전히 확인하지 못했다.

양원열·정용준씨는 6.25 당시 각각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 1학년과 물리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나 전쟁통에 소식이 끊어졌다.

정인혜씨는 "시숙이 서울을 방문하면 오빠 소식을 물어봐야겠다" 며 눈시울을 붉혔다.

○…통일부로부터 북한측 이산가족명단 2백명을 넘겨받은 대한적십자사는 17일 별관 2층 강당과 14개 시·도지사를 통해 남한에 살고 있는 연고자를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이날 오후 5시 현재까지 연고자를 찾은 사람은 1백14명. 확인서 작성을 맡고 있는 적십자사 윤희수(尹喜洙·40)예산팀장은 "북측이 찾는 남측의 부모들은 연고가 확인됐지만 이미 돌아가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 안타까워했다.

○…북한이 보내온 이산가족 명단을 확인해주고 있는 KBS 시청자 센터에는 이번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실수로 명단에서 누락된 사람은 없느냐" "이런 이름이 혹시 들어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달라" 는 등의 전화가 7백여통 걸려왔다.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 명단이 공개되자 북한에 두고온 가족을 찾는 사람들로 인터넷이 북적이고 있다.

통일부(http://www.unikorea.go.kr)·대한적십자사 (http://www.redcross.or.kr)등 정부 관련 단체를 비롯해 그리운나라(http://www.kcnc.co.kr/wwwbbs/seek/)·인터넷이산가족찾기(http://www.who119.com)·다바(http://www.daba.co.kr) 등 10여개의 이산가족 관련 사이트엔 북한에 있는 가족을 찾는 사연들이 수십여개씩 올라왔다.

라이코스코리아와 한국복지재단이 지난 10일부터 31일까지 펼치고 있는 '이산가족찾기 캠페인' 사이트(http://event.lycos.co.kr/evt000710/main.htm)엔 벌써 4백50여명이 등록하는 등 사이버상에서도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회부·전국부·정보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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