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칼럼] 개헌의 정치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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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북 정상회담 직후 피어오르기 시작한 개헌론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표면으로 떠올랐다. 여야가 모두 개헌론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뭔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꾸고 있는 게 분명하다.

개헌론을 둘러싼 여야의 정치적 계산은 무엇일까. 5년 단임(單任)을 4년 중임(重任)으로 바꾸면 어떤 당의 누가 득을 볼 것인가, 개헌론이 다시 공론화할 수 있을까, 정말 개헌이 될까. 이런 것들이 대선을 2년 남짓 앞둔 향후 정국의 중요 변수다.

*** 現대통령은 得 못봐

개헌론이 제기된 그날 청와대측의 표면적인 제동에도 불구하고 한 여당의원은 끈질기게 개헌에 대한 총리의 의견을 물었다.

그의 질문의 골자는 한마디로 현대통령의 임기 중에 개헌하자는 것이다. 그의 의도가 충성심 때문인지, 아니면 민주당 저변의 기류를 반영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현대통령을 개헌의 적용대상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한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과연 개헌의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인가. 두가지 점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첫째로 임기.중임 조항을 고쳐도 金대통령 자신은 그 적용대상이 안된다. 1987년에 전면 개정된 지금의 헌법은 군사장기집권에 대한 국민저항의 결실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장기집권 견제장치를 해두고 있다.

개헌발의를 어렵게 해둔 데다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헌법 제128조 2항)고 못박고 있다. 만약 그 조항마저 고치려고 하다간 위헌(違憲)시비에 휘말려들 것이다.

둘째로 남북문제와 연계시키기에는 너무 요원하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남측의 연합제안이라는 것은 실은 金대통령 자신의 사적(私的) 통일방안인 공화국연합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방안에 따르면 남과 북은 우선 2체제2정부의 단계로 들어간다. 이 단계에서 남북은 연합기구를 마련하고 그 아래 수뇌회담.각료회담.국회회담 등 협의체제를 만든다.

그 단계가 10여년 정도 지속되다가 연방을 구성하는 2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이에 대비하는 개헌을 주장할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아직 1단계 연합기구도 논의되지 못한 단계에서 이에 대비하는 개헌은 뜬구름 잡는 얘기다. 더군다나 7.4 남북공동성명이 유신체제로 이어진 악몽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하지만 남측의 일방적 지원합의의 이면에 정략적 의도가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들이 나도는 것도 그런 기억들 때문이다.

그 자신 유신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金대통령은 아마도 위헌론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집권연장에 대한 반대여론이 들끓게 되는 상황에서 '민주인권대통령' 의 이미지를 해칠 무리한 개헌시도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통령이 아무런 이득을 볼 수 없는 개헌론이 얼마만큼 추진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 처방이 바로 정.부통령제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의석수에서는 물론이고 득표율에서도 야당에 졌다.

그렇다면 다음 대선에서는 더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동교동계 일부가 호남재집권 불가론을 주장하면서 다른 쪽에서 후보를 영입해들이자는 의견을 내놓는 것도 그런 정세를 기초로 한 것이다.

그러나 동교동계의 또다른 일각에서는 계속집권을 주장한다. 문제는 고질적인 지역감정인데 이것을 호남대통령후보+영남(또는 다른 지역)부통령후보라는 묘방으로 돌파하자는 것이다.

개헌의 명분은 바로 개혁정책과 남북정책의 일관성 있는 추진이 되는 것이다. 야당이 집권하면 대북정책이 지속될는지 의문이라는 말은 이런 함축을 가진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래도 승산이 보이지 않으면 JP나 또는 다른 젊은 대통령후보+호남부통령후보라는 조합도 가능할 것이다.

*** 정권획득 겨냥한 각축전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총재쪽은 4년중임 개헌을 여러차례 주장해왔다. 하지만 만약 정.부통령제가 그의 배타적인 영남지지를 허물어뜨릴 가능성이라도 보인다면 그런 개헌에 찬동할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대통령의 임기나 단임제를 고치는 문제는 어느 당의 집권전망, 구체적으로는 누가 대선후보가 되느냐와 결부된 정치산술이다.

정권재창출이 정당의 생리인데 어느 정당인들 어렵게 잡은 정권을 쉽게 내놓으려 하겠는가. 그래서 위헌이든 아니든 개헌론은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 몇차례 수면 위로 부상했다가 잠수하기를 거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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