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속좁은 '친북' 논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한 방송과 통신들의 남쪽 정치인들에 대한 비방보도로 벌어진 우리 내부의 논쟁과 갈등이 소모적인 정쟁과 국론분열의 양상으로 발전하는 모습은 심히 우려되는 현상이다.

특히 국회에서 '친북(親北)' 발언을 둘러싸고 정당과 청와대.정부기관들이 얽혀 다투는 모습은 우리 내부 사고의 편협성을 보는 것 같아 남부끄러운 점도 없지 않다.

수차례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남북 정상회담이 제대로 열매를 거두고 생산적인 남북관계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과제와 문제점들에 대해 성찰하고 짚어보는 토론과 논쟁이 진지하고 활발하게 벌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남북협력의 시대를 연 만큼 잘 하기 위한 비판이고 상생을 위한 논쟁이고 토론이어야 한다.

6.15공동선언이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담보할 것인가, 이산가족 상봉이 일시적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되지 않는가, 막대한 경협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며 얼마만큼 주기로 했는가, 북한은 과연 변화하고 있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정부의 충분한 정보공개와 설명을 요구하고 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TV만을 통해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의 활달한 언행과 정상회담의 겉모습밖에 보지 못한 국민으로선 이 모두가 진정으로 알아야 할 중요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를 보면 정부측은 정상회담 홍보에는 신속하면서 그 비판에는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의 일부 인사들과 친여매체들은 비판적 의견들을 모두 반통일적이거나 아니면 냉전적 사고로 몰아붙이는 편협성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야당 역시 확실한 노선을 정하지 못한 채 대안 없이 시비를 붙이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분단 이후 오랫동안 군사정권의 통치기간을 거치면서 우리 의식 내부에 침윤해 있는 냉전적 사고가 씻기지 않고 있고 그 흔적의 골이 깊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이 골을 넘어서 새로운 남북관계 형성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합리적 논의절차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일시적인 가치 혼란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할 것이며 정부나 언론은 이를 건강하게 유도할 책임이 있다. 지금처럼 서로간의 비판적 시각 자체를 '수구(守舊)' 니 '친북' 이니 하면서 극단적 언어를 동원해 비난하고 남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행위야말로 이분법적 냉전사고의 유물일 뿐이다.

북한은 앞으로도 편가르기 비방전술을 계속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더라도 그런 보도 하나 하나에 정치권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더군다나 이에 대한 다양한 비판 의견을 서로 용납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적(知的) 테러리즘이 아니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