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한 미군과 미군병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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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북 정상회담이 좋은 모양새로 마치게 됨으로써 남북 화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의 전망이 커지면서 과거 북한의 군사적 위협 때문에 설치 또는 유지돼 온 법제.기구.의식 등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예컨대 보안법의 개정 또는 군사교리에 있어 주적(主敵)개념의 변경 등이 제기되는 것은, 성급한 기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논의대상이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스러운 일로 여겨질 것이다.

*** 개인의 일탈적 범죄 행위

일부의 사람들은 남북한 국사력을 비교할 때 남한이 우세하다는 점을 근거로 미군의 불필요함을 강조하기도 하나 전쟁이 의미하는 바가 남한과 북한에 있어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단순한 수치 비교는 선의로 해석해도 별로 의미없는 일이다.

남한의 경우는 전쟁이 어떠한 경우에도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전제 아래 상대, 즉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할 규모의 군사력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미군의 존재는 비록 당장 그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일단 전투가 개시되면 자동개입이 되고 따라서 막강한 군사력의 투입이 유도될 것이라는 소위 방아쇠 효과를 갖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미군의 한국 주둔이 대한민국 방어를 최고의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현재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방어는 미국의 세계적 전략의 일부분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과 우리의 이해가 일치하는지의 여부지 정말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아니다.

필자는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갖고 있지만 반대의견에 귀를 막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군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사회 전체적으로 강한 설득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미군주둔에 대한 반대보다 이 반론이 반미의 논리로 이어지는 데 있다. 감정상의 차원에서 미국을 배척하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바로 미군철수론이 갖는 부족한 호소력의 증거처럼 보인다.

미군의 문제가 합리적 논쟁의 수준을 넘어서는 듯한 분위기가 우려되는 것이다. 특히 국가안보 논의 수준에서의 미군의 존재와 해이된 기율 때문에 발생되는 개별 병사차원의 범죄적 행위를 엮어 미군이 단순히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민족감정에 위배되는 존재로 논의를 유도해 결국은 미군 주둔 문제를 도덕적 차원에서 평가하려는 태도를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한미군의 필요성 여부를 둘러싼 논쟁을 가만히 보면 순수한 의미의 군사적 안보에 관련된 것이라기보다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정치.사회 체제가 과연 어떤 것이어야 되는가라는 국내정치문제에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미군주둔을 찬성하거나 두둔하면 마치 반민족적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통일문제와 관련해 어떤 통일인가를 따지는 태도에 대해 반통일적 사고방식으로 모는 것이나 북한 지원과 관련해 북한정권의 성격을 논의하고자 하면 동포애를 갖지 않는 냉혹한으로 몰아가는 태도와 궤적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 전체 도덕성과 연계 곤란

통일.북한.미군의 문제는 모두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오늘날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자유로운 토론이 금지됐던 사항이다.

8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던 반권위주의 운동의 맥락에서 이 주제들에 대한 새로운 각도에서의 토론은 정치적 저항의 의미를 띠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권위주의가 청산된 현재 그 주제들이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논의된다면 비록 과거와 정반대의 모습이지만 역시 자유로운 토론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군의 한국 주둔과 미군 병사들의 개인적 비행 문제는 이론적으로는 전혀 별개이나 현실적으로 후자가 전자에 관련된 여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병사의 군기확립, 사격연습장 선정 또는 행정협정 개정협상 등의 문제에서 미국측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도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박상섭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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