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 파행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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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정부 질문 사흘째인 13일 오전 11시38분 국회 본회의장.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은 "여야가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우리 국회를 세계와 이북에서 보면 뭐라고 하겠나. 냉정해질 것을 부탁한다" 고 외치며 정회 선언 방망이를 두드렸다.

한나라당 권오을(權五乙)의원의 '친북세력' 발언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로 6시간30분 계속된 16대 국회의 첫 정회사태 장면이다.

◇ 본회의장 공방〓權의원이 "도대체 북한에 무슨 약점을 잡혔길래 저자세를 취하고 있나. 언제부터 청와대가 친북세력이 되었나" 라고 한 게 도화선이 됐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에 대한 평양방송의 '입에 담지 못할 극언' (權의원)을 다루는 청와대의 태도가 소극적이라는 불만이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고성과 야유가 터져나왔다. 서영훈(徐英勳)대표도 "사과하시오" 라며 한나라당 의석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천정배(千正培)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에서 "청와대가 용공세력이냐는 식의 발언은 과거 50년 동안 우리당에 해온 비열한 용공음해를 재연한 것" 이라고 맞섰다.

그러자 한나라당 이병석(李秉錫)의원은 "청와대 수석 발언은 김대중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냐" 고 맞받아쳤다. 급기야 "나가 임마" "임마라니 누구야" 등의 고성이 오갔다.

◇ 격앙된 민주당〓의원총회에서 정균환(鄭均桓)총무는 한나라당을 "막가는 야당" 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점심도 거른 채 의원 19명이 나와 성토했다.

▶서영훈〓그대로 두면 야당과 국사를 논하기 어렵다. (權의원 발언대로라면)친북세력과 북쪽세력이 야합한 꼴이 된다.

▶이협(李協)〓통일의 길을 저해하는 세력과 과감히 맞서야 한다.

▶남궁석(南宮晳)〓대통령이 멀고 긴 통일의 가시밭길을 출발했다.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싸울 건가. 사과는 받되 의연히 대처하자.

▶김원길(金元吉)〓보수.반통일 세력과의 대결구도로 몰면 도움이 안된다.

◇ 분노한 한나라당〓의총을 두번 열었다. "여당이 과잉반응한다" 며 청와대 사과까지 요구했다.

▶권철현(權哲賢)〓북한방송을 보고하자 李총재는 "어이없지만 북한이 50년 이상 늘 했는데 점잖게 대응하라" 고 지시했다. 그래서 부드러운 성명을 냈다. 그러나 청와대 모 수석의 발언은 악질적인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종웅(朴鍾雄)〓청와대가 북한의 정치권 길들이기에 편들고 있다. 북한엔 저자세, 남한엔 고자세다. 자기들이 하면 통일지향이고 반대하면 반통일세력이라고 몰아세운다. 역(逆) 매카시즘이다.

▶하순봉(河舜鳳)〓친북이란 표현에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면 어떻게 청와대 수석이 그런 말을 하나. 강력 대처해야 한다.

◇ "용공이란 뜻 아니었다" 〓정회 도중 민주당 정균환 총무와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총무가 만나 야당 공세의 대상인 청와대 남궁진(南宮鎭)정무수석과, 사태를 일으킨 權의원이 각각 유감을 표시하는 것으로 해법을 마련했다. 오후 6시15분 본회의가 속개된 뒤 權의원은 "용공으로 받아들였다면 죄송하다.

그러나 야당 총재에 대한 극언을 (정부가)분명한 선을 갖고 대변해줘야 한다" 고 토를 달았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잘했어" 라며 흡족해 했다. 이만섭 의장은 속기록 삭제를 지시했고 중단됐던 대정부 질문이 이어졌다.

◇ 권오을 의원 누구인가〓도의원 출신 재선의원(안동.43.경북고-고려대 정외과)으로 1998년 예산심의때 이자율이 잘못 계상된 것을 발견, 1조4천억원을 삭감하는 '수훈' 을 세웠다는 당내 평가를 받았다. 대한상의 노조부위원장 출신.

이정민.최상연.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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