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문화 바꾸자] 대정부 질문 일문일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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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게 아닌데. "

11일 밤 국회 본회의 일문일답을 지켜보던 국회 사무처 고위 간부는 이렇게 중얼댔다.

TV에서 이 장면을 지켜본 서울대 박찬욱(朴贊郁.정치학)교수는 12일 "아직 멀었다. 묻는 의원이나 답하는 장관 모두 공부를 더 해야 한다" 고 꼬집었다.

16대 국회에 새로 도입된 본회의 일문일답(보충질문).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을 높여주는 진일보한 제도다. 그러나 제대로 정착하려면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 정치공세 펴는 시간 아니다〓첫날 정치분야에서 의원들은 예외없이 부정선거 문제를 들먹였다.

한나라당 민봉기(閔鳳基.인천 남갑)의원은 김정길(金正吉)법무부장관에게 "충주와 창원의 부정선거 조사 결과가 상반된 이유가 뭐냐" 는 질문만 던지곤 내려갔다.

부정선거를 둘러싼 여야간 정치공세가 오가느라 신상발언도 난무했다.

朴교수는 "여당 대 야당의 정치공세 대신 국회 대 행정부간 정책검증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며 "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장관의 견해는 뭐냐' 는 식의 질문은 무의미하다" 고 말했다.

◇ 깊이있는 문답 적어〓주요한 정책 이슈를 놓고 심층토론은 아직 눈에 띄지 않았다. 대부분 앞서 했던 본질문의 반복이다.

11일 민주당 임종석(任鍾晳.서울 성동)의원과 李총리간 문답.

- 한.미 행정협정(SOFA)개정협상 때 우리 권리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 상황 등을 보면서 대처해야 한다.

"정부와 여야가 힘을 합칠 수 있는 사안이다." 충고성 질문 탓인지 답변도 원론적이었다.

◇ 실무국장도 내보내야〓金법무장관은 11일 민주당 함승희(咸承熙.서울 노원갑)의원이 세풍(稅風)사건과 관련해 이석희(李碩熙)전 국세청차장의 신병 확보 여부를 집요하게 캐묻자 "파악 못했다" "모르겠다" 고 답했다.

국회법 제121조에는 정부측 본회의 출석자로 국무위원(장관급)외에 정부 위원(차관급.국장급)도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실무, 구체적 쟁점은 국회 권위만 내세워 총리나 장관만 고집해선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핵심 주문사항이다.

국회가 열리면 한 부처에서 수십명 공무원이 몰려들어 답변서를 써주고 장관들은 대독(代讀)하는 관행도 그래야 사라진다.

◇ 초선들의 얼굴 알리기 장(場)이어선 안된다〓16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에 나서는 의원들은 44명. 절반이 넘는 23명이 초선이었다.

국회 관계자는 "일문일답이 지역구 홍보용이나 초선의 얼굴 알리기용으로 활용되기 쉽다" 면서 "▶쟁점을 압축▶중진이나 해당 분야 전문가 의원으로 질문 의원수를 줄이고▶장관 외에 국장도 답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고 말했다.

고려대 함성득(咸成得.행정학)교수는 "행정부의 부처 책임자와 깊이있는 토론을 벌이려면 전문성 있는 의원들이 나서야 한다" 고 강조했다.

박승희.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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