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악어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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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29년 대공황의 물결은 다이아몬드 시장에도 여지없이 밀려들었다. 수요가 급감하면서 원석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다.

남아공(南阿共)의 요하네스버그 본사에서 시장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드비어스의 회장 에르네스트 오펜하이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장에 나온 다이아몬드 원석의 전량매입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운명을 건 도박이었다. 값이 계속 내려갈 경우 드비어스의 파산은 불보듯 뻔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오펜하이머에게 미소를 보냈고 원석 시세는 오름세로 돌아섰다. 드비어스의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독일계 유대인인 오펜하이머는 16세 되던 1896년 런던으로 건너가 다이아몬드 중개회사 사환으로 취직한다.

6년 후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는 남아공의 킴벌리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19년 자신의 회사를 차려 독립하고 이를 발판으로 26년 드비어스의 경영권까지 장악한다. 죽는 날까지 그가 견지한 것은 '마지막 보루' 정책이었다.

무제한 매입과 수급조절에 바탕을 둔 글로벌 독점전략이다. 지금도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다이아몬드 원석의 70%가 런던에 있는 드비어스의 중앙판매기구(CSO)로 집중되고 있다.

드비어스가 60여년만에 '마지막 보루' 정책의 포기를 선언했다. 아프리카 내전의 상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인도적 고려가 이유로 제시됐다.

오펜하이머의 손자인 니키 오펜하이머 회장은 어제 런던에 모인 1백25명의 전세계 독점거래업체 대표들에게 "아프리카 내전지역에서 채굴된 원석은 일절 취급하지 않는다" 고 밝히고 이를 어기는 업체와는 거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무차별 매입정책을 포기한 것이다. 연간 70억달러에 달하는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 시장의 10~15%가 앙골라.콩고.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내전지역의 반군세력에 의해 흘러나온 원석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군들은 원석을 팔아 암시장에서 무기를 사들여 인명 살상도구로 쓰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아프리카 내전의 씨앗이고 씨는 드비어스가 뿌린다는 비판에 마침내 드비어스가 귀를 기울인 것일까.

드비어스는 지난해 1억7천만달러(약1천8백억원)를 들여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며 세계적인 소비촉진 캠페인을 벌였다.

올해는 그 두배를 광고비로 쏟아붓고 있다. 독점전략의 포기는 더 이상 감당키 어려운 재고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악어의 눈물' 을 보는 듯하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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