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의 책vs책] 우울증 이기는 '희망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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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태양
원제 Soleil Noir-Depression et Melancolie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음, 김인환 옮김
동문선, 322쪽, 2만7000원

우울한 현대인에게 주는 번즈 박사의 충고
원제 Feeling Good - The New Mood Therapy
데이비드 번즈 지음, 박승룡 옮김
문예출판사, 457쪽, 1만원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만나는 여성마다 명절 증후군이나 명절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 명절 때면 주부의 어깨에 얹히는 의무와 노동량 때문에 벌써부터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 듯 우울해진다는 사람도 있고, 명절과 관련된 성장기의 기억 때문에 명절 때면 심한 우울증을 앓는다는 이도 있다. 명절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한 여성의 목소리가 가슴 깊이 박혀서 우울증에 대한 책 두 권을 떠올려 보았다.

『검은 태양』은 프랑스 정신분석의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우울증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정신분석의라고는 해도 그녀의 학문은 기호학·인류학·철학·페미니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에 그녀의 저술은 여러 분야의 학문적 입장들이 서로 교차·융합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이 책 역시 앞쪽 3분의 1은 우울증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에 할애되어 있고 뒤쪽 3분의 2는 예술 작품들이 어떻게 우울증의 자리에 닿아 있는지를 고찰한 비평으로 이뤄져 있다.

프로이트의 계보를 잇는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에서는 우울증을 억압된 분노의 표현이라고 한다. 물론 분노는 잃어버린 대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며 ‘돌아오지 않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울증은 ‘상실한 대상에 대한 참기 힘든 슬픔의 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반면 현대 분석의들은 우울증을 ‘불완전하고 텅 빈 원초적 자아의 신호’라고 본다. 개인은 어떤 근본적인 결점, 선천적인 결여로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우울증은 나르시스적인 상처의 가장 원초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 역시 멜랑콜리와 닿아 있다. 비탄과 절망을 충격적으로 표현한 홀바인의 그림 ‘죽은 그리스도’, 어둠과 고독의 세계를 절연하게 읊은 네르발의 시 ‘상속받지 못한 자’가 그런 맥락에서 분석된다. ‘검은 태양’이라는 제목은 “내 류트에는 멜랑콜리의 검은 태양이 새겨져 있다”는 네르발의 시에서 나왔다. 고통과 부도덕한 용서의 세계를 그려내는 도스토예프스키, 어설픔의 미학으로 여성 우울증을 전파하는 뒤라스의 작품 세계도 분석되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멜랑콜리의 검은 태양’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똑바로 바라보다’라는 개념은 미국 정신과 의사들이 정서 장애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개발한 ‘인지 요법’과도 상통한다. 인지 요법이란 “우리의 모든 기분은 우리의 ‘인지’ 또는 생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전제 하에 “우리를 우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정신적 왜곡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정확히 가려내어 제거하고, 효과적으로 자신의 기분을 다룰 수 있도록 하는” 치료법이라고 한다. 데이비드 번즈는 인지 요법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며 『우울한 현대인에게 주는 번즈 박사의 충고』는 인지 요법의 노하우를 담고 있다. 우울증 증상은 자신의 객관적 모습과는 무관하고 또한 근거조차 없는 무력감·비하감·자책감·비애감 등에 시달리는 것이다.

“우울함을 느낄 때 우리의 사고는 부정성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그런 때는 자신뿐 아니라 세계 전체를 어둡고 침울한 용어로 지각한다. 우리의 정서적 혼란을 일으키는 부정적 사고에는 거의 언제나 큰 왜곡이 포함되어 있다. 그 비합리적이고 뒤틀린 생각이 고통의 중요한 원인이다.”

이 책에는 우울증 정도를 진단할 수 있는 구체적 항목, 우울증의 기초를 이루는 10가지 인지적 왜곡 방식, 왜곡된 자기 인식을 벗어버리고 우울증에서 걸어나올 수 있도록 돕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앞의 책이 인문학적 사유의 전개여서 좀 어려운 반면 이 책은 내용도 실제적이고 읽기도 편하다.

오늘날 우울증은 너무 흔하고 보편적인 것이어서 정신의 감기쯤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인간을 자살에 이르게도 하는 치명적인 증상이다. 뇌 과학자들은 우울증이 단순히 뇌 안의 어떤 호르몬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또 다른 과학자들은 우울증을 유전적 질병처럼 신체 화학작용의 장애로 구분하기도 한다. 우울증이 일조량과 관계가 있다는 연구도 있어 일조량이 적은 시기에 발생하는 우울증은 특별히 ‘계절 우울증’이라는 이름도 붙어 있다. 우울증에 대해 이토록 이견이 많은 것은 그 명확한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형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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