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시시각각

당신 미래 위한 동그라미 여덟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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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하지만 심판은 그것이 아무리 가혹해도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요, 소 잃고 고친 외양간일 뿐입니다. 실수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을 깨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리 잘 살펴서 실수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내년에 여러분들은 다시 시험에 들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내년 6월 2일 치러질 지방선거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여간 어려운 시험이 아닙니다. 마치 남북전쟁 직후의 미국 선거 같기도 합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남북전쟁이 끝나자 흑인들도 투표권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무지한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기 싫었겠지요. 미국 헌법을 잘 모르면 선거권을 가질 수 없다는 법이 그래서 나옵니다. 투표 전에 구두시험을 보는데 백인에겐 “미국 대통령이 누구냐”는 간단한 질문을 하지만 흑인에겐 달라집니다. “미국 헌법이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제창한 권력 분립론에 의거해 있음을 설명해 보시오.”

우리 지방선거를 봐도 그렇습니다. 일부러 어렵게 해서 투표를 포기하도록 만든 것 같다는 말입니다. 내년 선거는 그저 시장이나 군수만을 뽑는 게 아닙니다. 무려 여덟 번이나 붓두껍을 눌러야 합니다. 광역단체장과 광역의회 선거구 의원, 광역의회 비례대표 의원 투표에 한 번씩,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 선거구 의원, 기초의회 비례대표 의원 투표에 또 한 번씩, 그리고 교육감과 교육위원 투표에 한 번씩 찍어야 합니다. 뭐가 뭔지 구분이 안 가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지금 현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분도 많을 겁니다. 누가 되든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틀렸습니다. 상관이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것보다 더 개인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놈 촘스키도 조언합니다. 어떤 정책이 미치는 영향력이 하층부로 내려갈수록 더 커지고 직접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당신의 투표에 따라 당신은 세계 최고의 초호화 청사를 가진 도시에서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당신 자녀가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자유로운 정치집회를 하는 학교에 다니게 될 수도 있습니다. 법을 어긴 단체장 탓에 임기 동안 세 번의 선거를 하는 상황도 생기게 됩니다.

무엇이 옳은지 판단은 여러분 몫입니다. 하지만 그 판단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올바른 투표가 필요합니다. 이제 5개월 남았습니다.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공부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 현직에 있는 분들부터 살펴보십시오.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보세요. 그들을 추천한 정당도 감안하세요. 교육감과 교육위원은 정당 추천을 받진 않지만 성향을 잘 살펴야 합니다.

링컨은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렇게 찍은 투표는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케네디의 패러디가 바로 그 말입니다. “오늘날 자유란 한 발의 총성도 울리지 않고 투표에 의해 잃어버리게 된다.” 그 자유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소중한 자녀의 것입니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