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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안보리 상임이사국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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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일본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엔헌장에 따르면 상임이사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군사참모위원회에 참석하며, 신탁통치 지역의 시정에 참여하는 신탁통치이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동북아 국제질서와 한반도 위기상황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위다. 현 상임이사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연합국 5개국이고, 일본.독일.이탈리아는 동맹국으로 패전국이 돼 유엔헌장의 적국조항에 의해 규제받고 있다. 유엔헌장 제53조와 제107조의 '구적국조항'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국의 적국이었던 국가가 다시 침략전쟁으로 간주되는 행동을 할 때는 연합국이었던 유엔 가맹국이 안보리 결의 없이 그 국가를 공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일본은 구적국조항의 삭제를 요구할 뿐 아니라 유엔의 구조개혁을 통해 안보리 이사국의 수를 늘리고 상임이사국으로 선임되려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상임이사국 진출 명분으로 유엔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분담금을 사실상 미국보다 더 많이 내고 있다는 사실과 국제공헌의 실적을 들고 있다. 안보리 개혁의 목적은 결정한 정책을 유효하게 실행하기 위한 실효성과 국제사회를 대표하는 정통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또 능력과 의사가 있는 국가들을 상임이사국에 추가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중진국.개도국에서도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일본은 단독으로 상임이사국이 돼도 좋고 독일.인도.브라질.이집트 등과 공동으로 진출해도 좋다는 전략이다. 중국에 더해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면 동일지역 국가인 한국은 전혀 기회가 없다.

일본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면 평화헌법 하에서 평화적 국제공헌을 중심으로 새로운 안보리의 역할을 보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안보리의 역할은 단지 평화적 공헌만을 수행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집단안전 보장을 중심으로 한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결국 미국이 지적했듯이 평화헌법 제9조의 개정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정상적인 군대를 창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은 헌법 개정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21세기 들어 일본은 전쟁의 과거사를 총결산하고 새롭게 보통국가로 탄생하려는 강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정상적인 군사.외교 활동을 수행하는 군대를 보유하기 위한 평화헌법의 개정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증강해 경제력에 걸맞은 정치.외교상의 국제적 위상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고이즈미 정권과 자민당.민주당의 보수그룹에는 전쟁과 원자폭탄의 피해를 기억하는 평화주의자들의 반대를 무력화하기 위해 북한의 안보 위협, 테러 발생 위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압력 등이 필요하다. 따라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기 위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는 헌법 개정 추진파에 좋은 구실이 된다. 일본은 미.일동맹 강화 시기를 맞아 미국의 지원과 압력을 이용해 헌법 개정과 군사력 증강을 통한 보통국가화 및 군사대국화를 추구하고 있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도 이와 병행 추진해 상승 효과를 노리고 있다.

한반도 위기상황 때 자동으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해 전쟁과 신탁통치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서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면 일본은 그만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역사의 철저한 반성과 사과, 개혁을 거친 독일이 유럽연합의 지도적 위치에서 유럽을 리드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국의 국가이익을 위한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주변 국가에서 신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서는 한국.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신뢰 획득이 선결과제다.

김성철 세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