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암시장 물가 120배까지 … 화폐개혁 무력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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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이 단행한 화폐 개혁 효과가 한 달도 채 안 돼 사실상 무력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구화폐 100원을 신화폐 1원의 비율로 바꾸는 디노미네이션(통화명칭 단위의 변경)을 단행했다. 이 조치는 상품 부족에 따른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빈부격차 확대를 막으려는 의도에서 전격 실시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아사히(朝日)신문은 최근 북한과 인접한 중국 선양(瀋陽) 르포를 통해 북한 당국이 디노미네이션 후폭풍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27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혼란이 확대되자 신구 화폐의 교환 한도를 최근 1인당 50만원까지 인상했다. 처음에 10만원이었던 교환 한도는 15만원, 30만원으로 잇따라 인상된 데 이어 처음보다 다섯 배에 이르는 50만원까지 확대됐다는 것이다. 이는 당초 한도였던 10만원으로는 미국 달러화와의 실질 교환액이 10달러에도 못 미치면서 북한 전역에서 주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디노미네이션 이후 신화폐체제의 불안이 확산되자 국영 상점에 정가 판매를 지시했다. 이들 국영 상점에는 1㎏ 기준 쌀 44원, 돼지고기 45원, 콩 12원으로 가격이 표시됐다. 그러나 국영 상점에서 상품을 구하지 못하자 암시장에서 정가의 5~120배로 매매가 이뤄지는 등 물자와 생산 부족에 따른 만성적 인플레이션(물가상승)으로 디노미네이션의 효과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은행원 출신의 한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에서는 자산 규모가 파악되는 것을 우려해 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부유층이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화폐 단위 변경의 충격으로 개인 자산을 지키기 위해 중국 위안화나 미 달러화를 보유하려는 움직임도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신문은 “암시장에서는 위안화와 달러화를 북한의 신화폐로 바꾸는 비율이 최근 한 달 사이에 10배 이상 올랐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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