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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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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는 원자력을 싫어하는 나라다. 다 지은 뒤 가동하지 않는 원전이 하나 있긴 하다. 츠벤텐도르프(Zwentendorf) 원전이다. 반핵 여론에 밀려 국민투표 끝에 1978년 11월 문을 닫았다. 반핵을 주도한 노벨상 수상자 콘라트 로렌츠는 “원전은 가장 비싼 고철 덩어리가 됐다”며 좋아했다.

몇 달 뒤인 79년 3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섬의 원전에서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오스트리아의 선택이 선견지명인가 싶었다. 당시 카터 미 행정부는 “새로운 원전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86년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이 방사능을 뿜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원전에 등을 돌렸다.

프랑스는 달랐다. 자국 원전회사인 프라마톰을 앞세워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기종 하나로 10년간 내리 6기를 건설했다. 기술을 익히자는 계산이었다. 82년엔 일감이 없어 고전하는 웨스팅하우스를 꼬드겨 원천기술 사용권까지 사들였다.

원자탄 두 방을 맞고 손든 일본도 50년대부터 원자력 정책을 줄기차게 밀어붙인 나라다. 일본 원자력의 대부는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 야스히로. 55년 원자력기본법 제정에 앞장서고 59년 과학기술청 장관에 취임해 일본을 원자력 대국으로 이끌었다. 일본은 사용후연료의 재처리시설까지 세우고, 원조 미국업체를 인수해 원천기술을 손에 넣었다.

한국도 배짱 좋게 원전을 세워나갔다. 80년대부터 방폐장 선정을 놓고 반핵 시위가 일어나고, 각종 괴담이 난무했으나 한눈을 팔지 않았다. 한국의 원자력 대부는 이승만 대통령이다. 발상지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한전 중앙연수원 부지다. 딱 50년 전 바로 이곳에 이 대통령은 ‘원자력연구소’를 출범시켰다. 지금도 연구용 원자로가 남아 있고, 가까운 곳엔 이 연구소에서 갈라져 나온 원자력병원이 있다. 30년 반핵 운동이 지나가자 원전은 더욱 안전하고 온실가스 배출도 거의 없는 청정에너지로 재조명됐다. 프랑스·일본·한국이 수천조원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마침내 27일, 한국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사업을 수주하며 원전 수출 시대를 열었다. 삶의 터전을 원전 부지로 내놓은 이들의 희생, 과학자의 땀, 그리고 역대 지도자의 꿈으로 버무린 원자력 50년의 결실이다. 이 땅의 원자력을 가꿔온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허귀식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