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다국적 기업이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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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업에도 국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생겨나 그곳에서 사업하는 회사는 미국 기업, 한국에 있는 회사는 한국 기업이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다국적(多國籍)기업(Multinational corporations.MNCs)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다국적기업은 말 그대로 여러 나라의 국적을 갖고 있는 회사를 말합니다.

처음 한 나라에서 시작했지만 차츰 전 세계로 뻗어나가 여러 나라에서 같은 회사 이름으로 공장과 회사를 세워 사업을 하는 회사를 뜻해요. 따라서 이들에게 국적과 국경은 큰 의미가 없지요. 다른 말로는 '세계기업' , '글로벌(Grobal)기업' 이라고도 해요. UN은 이런 회사를 '국경의 한계를 넘어선 기업' 이라는 의미에서 '초(超)국적기업' 이라고 부릅니다.

다국적 기업은 단순히 다른 나라 물건을 사거나 파는 무역회사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피자헛이라는 회사 아시죠. 피자를 만들어 파는 이 회사는 원래 미국에서 생겨났습니다.

물건이 잘 팔리자 외국에도 같은 이름의 가게를 내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1백개가 넘는 나라에 2만9천여개의 매장을 두고 장사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한국피자헛이라는 회사를 세워 사업하지요. 한국피자헛은 미국의 엄마회사(모회사, 본사라고도 해요)의 지시를 받습니다. 다른 나라에 있는 피자헛도 마찬가지예요.

또 엄마 회사로부터 기술과 브랜드(상표).돈(자금).인력(사람), 그리고 장사에 필요한 정보를 지원받거나 다른 나라에 있는 피자헛과 필요한 것을 서로 주고받는 체제를 갖췄죠.

특히 엄마회사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 얼마만큼 투자할 지, 또 어떤 나라에서 어떤 방법으로 장사할 지를 고민하고 계획을 짜는 총책임을 맡습니다.

이같은 기업의 거미줄같은 짜임새를 지구촌 영업망(글로벌 네트워크〓Global Network)이라고 해요.

피자헛처럼 적어도 두나라 이상에 공장.기업을 갖고서 사업하는 다국적기업은 6만여개에 이릅니다. 또 이들이 전 세계에 갖고 있는 아들회사(자회사)는 50만개가 넘는답니다.

최근 다국적기업이 많이 생겨나자 연간 매출액이 수백억~1천억달러이고 세계적인 기술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은 따로 '초(超)대규모 다국적기업' 이라고 부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제너럴일렉트릭(GE).마이크로소프트.코카콜라.필립스.지멘스 같은 곳이 대표적인 초대규모 다국적기업이지요. 세계에서 1백번째 안에 드는 회사와 은행들은 대개 초대규모 다국적기업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실제로 컴퓨터회사인 IBM 같은 초대규모 다국적기업은 지난해 일년동안 8백75억달러(우리 돈 약 1백5조원)어치의 물건을 팔았어요(매출).

다국적기업이 가장 먼저 탄생한 곳은 미국과 유럽이예요.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는 1920년대에 세계 18개국에 공장을 세웠답니다.

오늘날 다국적기업의 본사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나라도 미국이고, 일본.영국.독일.프랑스.캐나다.스위스.네덜란드 등 순서로 다국적기업을 많이 갖고 있어요.

다국적기업이 탄생한 것은 영리를 쫓는 기업의 특성과 깊은 관계가 있답니다. 장사가 잘되면 한 나라에서만 사업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지요. 돈을 벌 기회를 찾아 다른 나라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따라서 하나 둘씩 외국에 공장과 회사를 세우면서 다국적기업이 된 것이랍니다.

나라마다 자기네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위해 외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에는 비싼 세금을 물리거나 수입 자체를 막는 등 무역 장벽을 만들자 아예 공장과 회사를 그런 나라에 세워 운영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도 작용했답니다.

특히 세계 무역을 자유화하는 것을 약속한 세계무역기구(WTO)체제가 되면서 다국적기업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보다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찾아 가장 알맞은 곳에 공장을 세우는 일이 훨씬 쉬워졌기 때문이지요.

다른 이유도 있어요. 한 나라 안에서 어떤 회사가 너무 커지면 정부가 나서서 제일 큰 회사가 혼자 시장을 좌우하는 것을 막는 법(독과점방지법)을 만들거나 환경 규제를 까다롭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이같은 규제를 피해 많은 기업이 다른 나라에 진출했고, 이들도 대부분 다국적기업으로 발전했어요.

다국적기업은 전 세계를 무대로 사업하기 때문에 세계 경제를 더욱 활발하게 하는 등 좋은 역할도 해요. 특히 산업시설이 별로 없는 없는 나라에 공장을 짓고 세금도 내고, 일자리도 만들어 주는 등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이 좋은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많고 물건도 잘 만드는 다국적기업이 들어오는 바람에 힘이 약한 국내 기업들이 피해보는 경우도 있어요.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대부분 엄마회사가 있는 곳으로 가져가는 매정한 회사도 적지 않지요. 이 때문에 1960년대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미국계 다국적기업의 유럽 진출을 공식적으로 반대하기도 했지요.

다국적기업의 덩치가 너무 커진 점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무역의 80% 정도를 이들이 독차지할 정도니까요. 다국적기업이 없는 가난한 나라와 이를 많이 갖고 있는 선진국간 격차가 점점 더 커지는 것도 걱정거리 중의 하나에요.

그러나 돈과 기업이 국경을 초월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피할 수 없는 추세이므로 우리 기업도 다국적기업으로 변신하는 게 필요합니다.

실제로 삼성전자.현대자동차와 같은 국내 회사들도 미국.유럽.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 공장과 회사를 세우면서 세계 일류의 다국적기업으로 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 73개의 공장과 회사를 갖고 있고, 올해 외국에서 1백60억달러(우리 돈 약 1조9천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외국에 회사를 차리는 게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랍니다.

대우그룹이라는 회사 아시죠.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손꼽는 재벌이었던 대우가 해체된 이유가 바로 무리하게 다국적기업으로 변신하려는 전략 때문이었습니다.

대우는 세계 시장을 공략한다며 많은 돈을 빌려 곳곳에 공장을 세우는 등 욕심을 부리다가 90조원이라는 큰 빚을 남기고 쓰러졌어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려면 세계적인 기량을 갖춰야 하듯,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면 돈.기술 등 실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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