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혁 기류탄 멕시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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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멕시코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대변혁의 길목에 접어들었다.

지난 2일 치러진 대선에서 제1야당인 국민행동당(PAN)의 비센테 폭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 71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지게 됐기 때문이다.

당초 폭스 후보는 집권당인 제도혁명당(PRI)의 프란시스코 라바스티다 후보에 비해 3~5%포인트 정도의 열세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멕시코 선관위는 물론 서방 언론들도 두 후보 사이 박빙의 승부를 예상했었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30%의 개표가 진행된 가운데 폭스 후보는 47.7%를 득표해 집권당의 라바스티다 후보를 15%포인트 이상 따돌렸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집권해왔던 제도혁명당의 무참한 패배다.

폭스 후보의 승리에 대해 멕시코 과달라하라대 교환 교수인 이성형(李成炯.서울대)씨는 "1929년 창당 이래 권력을 독점해온 권위주의적 1당 정부의 부패와 권력세습, 경제난에 대한 국민적 염증이 변화의 갈망으로 표출된 것" 이라고 지적했다.

폭스 후보의 주요 지지층이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기업인과 도시 중산층들이었다는 점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또 선거 막판에 5천8백여만명의 유권자 가운데 20%를 차지하는 젊은 세대와 여성 등 개혁성향의 부동층이 폭스에게 몰린 것도 그의 승인(勝因)이었다. 폭스는 선거기간 중 좌파 정치인들의 주장도 수렴, 지지세력을 넓혔다.

에르네스토 세디요 현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끝까지 중립을 지킨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정치후진국에서 집권 대통령의 영향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세디요 대통령은 개표도중 곧바로 폭스 후보의 승리를 인정하고 정권이양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짐했다.

다른 개발도상국과 달리 멕시코에서는 군부가 정치적 중립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폭스 후보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무엇보다 71년 간이나 장기 집권이 계속되면서 켜켜이 쌓여온 부정과 부패를 어떻게 척결할지가 큰 과제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층이 집단적인 반발을 보일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94년 대선 때는 기득권층 개혁을 외쳤던 집권당 후보가 암살당했다.

현 집권당인 PRI가 여전히 의회를 장악하고 있고 농촌지역에선 압도적으로 PRI를 지지하고 있다는 현실도 풀어야 할 숙제다.

폭스가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외자 유치를 통한 경제의 비약적 발전과 1백30만개의 일자리 창출, 공교육비의 두배 증액 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세기의 정권교체를 이룬 멕시코의 미래는 그래서 기대와 우려가 혼재된 상황인 것이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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