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싸움닭' 조계현 무기는 여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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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싸움닭' 조계현(두산)이 전성기 시절 무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팔색 변화구' 를 되찾은 것이 아니고 타자를 압도하는 강속구도 아니었다. 바로 마운드에서의 '여유' 였다.

30일 롯데와의 잠실전. 6회초 김응국의 타구가 외야로 날아가자 조계현이 갑자기 허리와 고개를 숙였다.

순간 홈런을 맞은 것으로 생각했던 관중들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조가 허리를 굽혀 다리를 벌린 채 가랑이 사이로 중견수 플라이 아웃되는 장면을 지켜봤던 것.

7회초 무사 1, 2루 위기에서 4번 마해영과 상대한 조는 마해영의 몸쪽을 과감히 공략하며 병살타를 이끌어냈다.

조는 경기가 끝난 뒤 "위기에서 중심 타선을 만나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며 "적어도 보내기 번트는 안 댈 것 아니냐" 고 여유를 부렸다.

올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조는 여유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해 고작 12경기에 출장해 3패(방어율 11.51)에 그쳤다. 93, 94년 2년 연속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했던 그로서는 참담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이날 7이닝 동안 3안타.무실점으로 시즌 3승(무패)째를 챙긴 조계현에게서는 다승왕 출신 다운 위압감이 풍겼다.

노련미와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프로 12년차 백전노장에게 다시 찾은 여유만큼 위력적인 무기는 없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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