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손실 공개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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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더 이상 숨겨놓은 부실은 없다."

금융감독원은 30일 은행과 투신의 부실을 유리알처럼 드러낸 만큼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또 부실은행의 구조조정을 앞당겨 금융권의 신뢰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투신(운용)은 고객재산인 신탁부분을 정리하면서 부실을 대주주나 회사측이 떠안게돼 이의 해소가 문제로 남았다.

은행 역시 잠재부실을 결산에 반영하면 당장 몇곳은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부실처리가 잘못되면 금융지주회사로 강제 편입되거나 일부는 퇴출될 수도 있다.

따라서 부실공개는 하반기에 본격화할 은행.투신 등의 험난한 구조조정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 부실 공개.정리 어떻게 했나〓강화된 새 자산건전성 기준에 따라 은행의 모든 대출을 낱낱이 평가했다. 예외로 인정했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기업 대출도 엄격히 부실로 분류하도록 했다.

은행들이 지난 10일 자진신고한 금액은 2조원 가량이었지만, 금감원이 이를 정밀 점검한 결과 추가 손실예상액은 3조9천억원으로 최종 집계됐다.

대우 1조1천억원 등 워크아웃 기업 대출에서만 3조2천억원의 추가 부실이 드러나 은행권 잠재부실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투신신탁의 경우 투신(운용)사와 종금사 등 모두 30개사의 1백억원이상 펀드 2천7백54개, 1백20조원어치를 대상으로 했다.

부도기업이 발행한 채권은 50% 이상, 워크아웃 기업은 최소 20% 이상을 손실로 처리했다.

전체 투신권 펀드들이 원래 보유 중이었던 부실채권 원본(매입가격)은 6조6천9백5억원. 이 중 2조2천6백38억원어치는 펀드에 그대로 남겨졌으며, 나머지 4조4천2백67억원어치는 펀드에서 빠져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펀드에 남겨진 2조2천6백38억원어치 중 1조2천1백8억원은 손실로 처리했다. 이는 펀드의 수익률 하락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사실상 고객이 부담한 꼴이다.

나머지 4조4천2백67억원어치의 부실채권은 정상채권과 묶어 자산담보부채권(CBO)을 발행했다.

대주주와 투신사들은 이 채권을 팔기 위해 은행 등에 담보를 제공하는 방식 등으로 1조7천억원을 부담했다.

◇ 남은 부실 어떻게 처리하나〓은행의 경우 기업여신을 많이 취급해온 한빛.외환.서울은행 등의 부실이 더 컸다.거래기업 중 상당수가 워크아웃.법정관리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따라서 당장 수천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새로 쌓아야 한다. 그러나 6월말 결산에 충당금을 모두 쌓을 경우 BIS비율이 떨어져 이를 연말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잠재부실이 적은 은행들은 6월말 결산에서 충당금을 추가로 모두 적립해 '클린 뱅크' 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특히 주택.신한은행의 경우 이미 정상여신은 물론 워크아웃 여신에도 금감원 기준보다 많은 충당금을 적립했기 때문에 잠재손실 규모가 오히려 마이너스로 나타나기도 했다.

투신운용사의 경우 영업이익 등을 통해 부실을 자체 흡수하거나 대주주가 책임지게 된다.

◇ 남은 문제〓우선 워크아웃 체제의 전면개편이 불가피해진다. 예외로 인정해주던 충당금을 부실기업과 똑같이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워크아웃팀 관계자는 "충당금을 50%, 1백%씩 쌓아야 한다면 워크아웃 업체 신규지원은 물론 재무상황이 어려운 기업을 추가로 워크아웃에 집어넣기도 어려울 것" 으로 전망했다.

조흥투신 한용전 마케팅팀장은 "부실공개는 끝났지만 남은 부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과제" 라며 "공적자금 지원 등 확실한 정리방안이 나와야 한다" 고 지적했다.

이정재.신예리.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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