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에 트리플 5종이라 … 또 하나의 연아가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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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광판에 점수가 뜨자마자 ‘아싸’ 소리가 절로 나오던데요.”

김해진

20일 서울 태릉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꿈나무대회. 열두 살 김해진(경기도 과천시 관문초등)의 연기가 끝나자 빙상장이 술렁였다. 4분여 연기 동안 김해진은 트리플 플립을 시작으로 트리플 루프, 트리플 러츠, 트리플 토 루프, 트리플 살코 점프를 차례차례 성공시켰다. 성인 선수들도 어려워하는 ‘트리플 5종’(6개 점프 중 트리플 악셀 제외) 점프를 모두 뛴 것이다. 국내 피겨스케이팅 역사상 중학교 입학 전 트리플 5종을 모두 뛴 선수는 ‘피겨 퀸’ 김연아(19·고려대)뿐이다. 김연아가 트리플 5종을 완성한 것도 김해진처럼 열두 살 때였다.

◆‘포스트 김연아’ 재목 찾았다=김해진의 등장은 피겨계에 단비와 같았다. 이날 심판을 맡았던 서울시빙상연맹 이정수 전무는 흥분된 목소리로 “심판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5개의 트리플 점프를 모두 프로그램에 구성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국내 피겨계가 ‘김연아 이후’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보석을 찾아낸 기분”이라고 했다.

더욱 놀라운 건 눈에 띄게 성장한 김해진의 실력이다. 이날 김해진이 받은 점수는 143.65(쇼트 49.58, 프리 94.07)점. 지난달 피겨스케이팅 랭킹전에서 받은 점수(121.32점)보다 22.33점이나 높다. 당시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해 김연아와 함께 2010 밴쿠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로 선발된 곽민정(수리고·143.87점)의 점수와도 엇비슷하다.

이정수 전무는 “전체적으로 가늘고 긴 실루엣이나 쉽고 높게 점프하는 폼이 김연아와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점프를 잘하는 선수 대부분이 그렇듯 유연성이 약간 부족한 것도, 엄청난 훈련량으로 이 약점을 극복해낸 것도 김연아와 비슷하다.

7세에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김해진은 4년 전 김세열 코치에게 지도를 받을 때 김연아와 함께 훈련했던 적이 있다. 김해진은 “그때 연아 언니의 스케이팅 속도가 너무 빨라서 휙 지나가면 무서워 벽에 붙곤 했어요. 나도 저렇게 스케이트를 잘 타고 싶다는 각오를 했죠”라며 수줍게 웃었다.

◆5종 점프 완성에 10개월=김해진을 지도하는 한성미 코치는 “해진이에게 점프를 가르치다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처음 트리플 토 루프 점프를 연습하는 데 6개월, 살코 점프를 연습하는 데 2개월이 걸렸는데 나머지 3개 점프는 각각 2~3주 만에 완성했다”고 귀띔했다. 러츠나 플립 등 소위 어렵다는 점프를 훨씬 쉽게 배운 셈이다. 한 코치는 “재능이 정말 뛰어난 선수라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김해진은 하루 6시간 정도 빙판 훈련을 하고 오전 훈련과 오후 훈련 사이 체력 훈련과 발레 교습을 받는다. 밥 먹을 시간도 모자라 인터뷰 중간중간 김밥으로 배를 채웠다. 초등학교 6학년생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훈련량. 그런데도 김해진은 “피겨는 참 재미있어요. 지난달 국가대표가 되면서 연습 시간이 3시간 정도 늘었는데, 그사이 점수도 20점 정도 올랐으니 오히려 연습을 더 많이 하는 게 좋죠”라면서 “엄마가 피겨를 그만두라고 할까 봐 그게 더 겁나요”라고 엄살을 부린다.

내년이면 김해진도 주니어 자격을 얻어 국제대회에 나설 수 있다. 그는 “일단은 국제대회 우승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점수를 높인 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는 빙판에서 연기한 후 애국가를 듣고 싶어요”라고 야무지게 말했다.

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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