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물건값 독촉 사례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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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전업주부 김은숙(32.서울 마포구 공덕동)씨는 얼마전 한 의류업체로부터 황당한 우편물을 받았다.

8년전에 구입한 숙녀복 할부금중 내지 않은 일부 원금(18만5천원)과 연체이자(46만6천원)을 내라는 독촉장이었다.

김씨는 그동안 전혀 연락을 받는 적도 없는데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기억할 수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보관된 온갖 영수증을 뒤져봤지만 찾을 수가 없어 고민하다가 해당업체에 전화를 하니 막무가내로 갚아야 한다는 말만 거듭할 뿐이었다.

부산에 사는 회사원 서은랑(29)씨의 경우는 더욱 황당하다. 이달초 마이너스통장 만기연장을 위해 은행에 갔더니 '신용거래 불량자' 가 돼있던 것. 은행측에선 옷값(5만6천원)을 내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이라며 납부확인서를 가져와야 연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서씨는 지난달초 7년전 구입한 옷값 일부를 미납했으니 빨리 갚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편지를 무시한 것이 화근. 분명히 완불한 것인데 영수증은 찾을 수도 없고, 주변사람들은 너무 오래된 일이니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만 믿고 있다가 당한 것이다. 서씨는 너무 창피하고 억울해 화병까지 얻었다.

이처럼 최근 상품 대금이나 서비스 이용료를 늑장 독촉해 소비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경우 늑장 독촉에 어찌 할 바를 몰라 호소하는 상담건수가 올들어 이미 1천건을 웃돌고 있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이나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등 민간소비자단체들도 하루 3~4건씩 문의전화를 받고 있다.

이들 소비자들은 이미 물건값을 지불했음에도 영수증 등 증빙자료를 이미 없애버려 애를 태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씨와 서씨는 "할부금을 매달 수금사원과 은행지로구좌로 완납했으나 중간에 착오가 발생한 것 같다" 며 "기억도 희미한 일을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고 주장했다.

늑장 독촉이 한창인 상품은 숙녀복.남성정장.학습교재.카메라 등 주로 할부판매제품인데 이밖에도 PC통신료.신용카드 결제대금 등 서비스상품은 물론 세금까지 광범위하다.

소보원 소비자상담팀 안현숙팀장은 "여러 업체들이 뒤늦게 자체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미수금 회수에 나선 것 같다" 며 "심지어는 10년이상 지나 소비자들이 증빙 영수증 등 증거물을 제시할 수 없거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일까지 들춰내 소비자들을 정신적.금전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고 말했다.

◇ 문제점=일부업체들은 채권을 하도급업체 등 다른 업체에 양도하거나 일명 '해결사' 로 불리는 채권회수 전문회사에게 넘겨 처리하고 있어 소비자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들은 소비자가 실제 미납한 돈이 있지 없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미납 대금을 갚지 않으면 회사나 가족에 알려 봉급을 압류하거나 대납을 받겠다는 등의 협박성 편지를 보내기 일쑤. 심지어는 소송을 제기해 재산압류 등의 법적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들도 법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소송비용에 대한 부담과 소액이라는 점에서 스스로 포기하고 변제하는 경우가 많다. 서씨 역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의류업체측에서 주장한 미납대금을 완납하고 신용거래 불량자 딱지를 떼었다고 한다.

◇ 대응 요령〓오래된 상품대금을 독촉받으면 우선 구입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관련 증빙자료를 챙긴다. 만약 구입 사실이 없다면 해당업체를 방문해 근거자료를 열람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 '지급할 수 없음' 을 골자로 한 내용증명을 해당업체에 발송해 훗날 법적인 대응을 준비한다.

그러나 10여년 정도된 증빙자료를 찾기는 쉽지 않은 일.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민법에서 정한 '채권의 소멸시효' 로 대응하면 된다.

채권의 소멸시효란 물건을 판 사업자는 소비자가 대금을 내지 않았다면 일정기간(상품대금은 보통 3년)안에 법적인 절차를 밟아 대금청구를 하지 않으면 그 기간이 지난 후에는 채권이 소멸된다는 것이다.

시민중계실 서영경팀장은 "소멸시효가 지났는데도 법원에서 지급 명령장을 보낼 수 있다" 며 "이때는 당황하지 말고 받은 날로부터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하면 정식 민사소송으로 이관된다" 고 설명했다.

그래도 독촉이 계속되면 소비자보호원(02-3460-3000)이나 민간소비자단체에 피해를 호소하면 구제받을 수 있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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