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중국판 단군묘 '황제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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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조상의 큰 덕 만고(萬古)에 끼치니…염황(炎黃)의 자손은 그 뿌리를 잊지 않고 양안(兩岸)의 일가가 친목을 이룹니다."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황제릉(黃帝陵)에서 6일 울려퍼진 축문의 내용이다. 전날 중국에 도착한 대만의 제2야당인 친민당(親民黨) 쑹추위(宋楚瑜) 주석 일행은 중국 방문 공식 일정 첫 행사로 이곳을 찾았다. 그는 중화의 자손이라는 말을 특히 강조하면서 "중화의 거센 기상을 21세기에 떨치자"고 목청을 높였다.

4월 청명절 때는 전 대만 외교부장 장샤오옌(蔣孝嚴)이 황제릉을 찾아 중화민족의 위대성을 부르짖었다. 황제는 염제(炎帝)와 함께 중국인들이 자신의 시조라고 생각하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중국 역사상 군주를 황제(皇帝)라고 부른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쑹의 이날 제례는 CC-TV 등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방송에 출연한 양안 전문가들은 뿌리를 잊지 않는 그의 '중화정신'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주요 일간지도 톱기사로 중화 시조를 받드는 그의 모습을 실었다.

중국인에게 황제릉은 이미 민족의 구심점이고 마음의 뿌리다. '천하제일릉(天下第一陵)'이라고 불리는 황제릉은 전체 면적 56만7000㎡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1992년 산시성 정부가 '황제릉 기금회'를 만들어 해외 모금 활동을 펼치면서 묘역 단장을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성 정부의 정비작업을 물심 양면으로 적극 도왔다. 지난해에는 해외 화교 등으로부터 묘역 정비 명목으로 2억 위안(약 260억원)을 헌금받았다. 중국을 하나로 묶을 정신적 구심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성 정부가 황제릉에서 공제(公祭)까지 올렸다. 사회주의 중국이 들어선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인들도 반감보다는 대환영하고 있다. 지난해 공제 때는 대륙의 중국인은 물론 해외 화교 등 3000여 명의 인파가 참석했다. 홍콩 영화배우 청룽(成龍)은 사회를 자청했다. 그리고 대륙이든 홍콩이든 대만이든 모두 황제의 자손이라고 열을 올렸다.

참배객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99년에는 30만 명 정도였으나 지난해에는 50여만 명으로 늘었다. 일부에서는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는 중국이 황제라는 정신적 지주를 만나 '중화민족주의'가 거세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종교에 별 관심이 없는 중국인들은 지금 자신들만의 종교를 가지려 하고 있다. 황제를 앞세운 중화민족주의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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